인쇄자료(책자형)로도 이용가능 접근방법: World Wide Web 이용가능한 다른 형태자료:순례의 인문학 바로보기
연계정보
원문
외부기관 원문
출판사 책소개
순례자는 집을 떠나 다른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선 사람을 일컫는다. 순례자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행자가 아니라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행자이다. 사실 순례자와 여행자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순례자와 여행자 모두 지리적으로 그 길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알고 떠난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순례자가 단순 여행자보다 여행의 목적과 의미를 더욱 중시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순례자는 특히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순례의 목적지가 대개 성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은 여행이고 순례는 인생이다. 순례길은 우리 인생을 짧고 굵게 체험할 압축판 인생길이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채워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한 자리에서 행복에 겨운 삶을 살고 있다면 왜 다른 곳을 방문하려들겠는가?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면 왜 다른 무엇을 찾아 나서겠는가? 우리는 뭔가를 결여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나선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사람은 평화를 갈구하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바라며, 병자는 치료를 원한다. 궁지에 빠진 사람은 출구를 모색하고, 영혼이 지친 사람은 휴식과 영적 깨달음을 바란다. 이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채워지기를 바라며 순례를 떠난다. 우리는 또한 보다 나은 삶을 희망한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가꿔나가기를 바란다. 평화와 화해, 용서, 치유, 깨달음 등을 바란다. 좋은 직장을 바라고 이상형의 남자(혹은 여자)를 바란다. 좌절을 딛고 새롭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러한 희망들을 안고 순례를 떠난다. 순례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신이 함께하는 초자연적 메시지가 가득한 길이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풍광의 자연과 상징들에서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사실 초자연적인 것의 의미를 잘 모른다. 또 다른 차원의 삶, 곧 깊이 있는 삶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해보지 않는다. 종교적이라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성찰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생을 돌아보고 초자연적 메시지를 들으러 순례를 떠난다. 오늘날 대륙과 문화와 종교를 초월하여 순례의 물결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관광기구가 2012년에 종교적 목적으로 여행한 자들의 수가 3억 명 이상에 달한다고 추산했을 정도이다. 프랑스의 루르드와 포르투갈의 파티마를 방문하는 기독교인들이 매년 1,300만 명에 달한다. 메카를 방문하는 무슬림들은 매년 수백만 명에 이르고, 신성한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러 베나레스로 가는 힌두교도들도 매년 그 정도에 달한다.
이 책 제1부에서는 ‘인생은 순례’를 다루었고, 제2부와 제3부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이냐시오 순례길’을 각각 다루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이냐시오 순례길에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분들에게 이 책이 아무쪼록 유용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금년 2021년은 사도 성 야고보의 성년(聖年)이다. 성년, 곧 ‘거룩한 해’에는 순례자들에게 사면을 베푸는 대사가 있어서 평년보다 훨씬 더 많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찾는다. 하지만 금년은 사정이 다르다.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으로 그런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당국은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 2022년도 성년으로 선포했다. 그러니까 2021년과 2022년 연속 2년이 성년이 된 셈이다. 이것은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2022년은 이냐시오 순례 5백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고 이냐시오 성인의 성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금년과 내년은 산티아고 길과 이냐시오 길을 순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해이다.
우리가 언제 한 그루의 나무그늘에도 감사하고 목을 축일 한 모금의 물에도 고마움을 느끼겠는가. 우리가 언제 알지도 못하고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과 “부에노스 디아스(좋은 아침)!”, “부엔 카미노(좋은 여행이 되기를)!”란 인사말을 건네며 행복해하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순례길에서는 자연스럽다. 우리 일상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일들이 순례길에서는 예삿일이 된다. 단 하루를 걷더라도 순례길을 직접 걸어보는 게 좋다. “산티아고는 길을 걷는 도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