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표제: 望月吠犬 인쇄자료(책자형)로도 이용가능 접근방법: World Wide Web 이용가능한 다른 형태자료:망월폐견 바로보기
연계정보
원문
외부기관 원문
출판사 책소개
역사학자의 눈으로 본, 감염병, 일제 불매운동에서 조국, BTS까지 우리 사회 현상의 이면을 읽는다!
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전우용은 40만이 넘는 팔로워가 있는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해 그는 ‘촌철살인’한 정의(定義)로 의미를 정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페이스북에서는 그의 그러한 정의 한마디 한마디가 결코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의 이면을 알고 싶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고 있다. 때로는 통렬한 풍자로, 때로는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으로, 때로는 역사학자로서의 정밀함으로. 그가 한마디하면 적어도 그것은, 페이스북 내에서는 또 하나의 역사적 ‘정의’가 된다. 일례로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망월폐견’의 경우도 그런 것이다.
그가 어느 날, ‘망월폐견’이라는 제목으로 짤막한 글을 올리자, 그날 적잖은 언론이 “전우용의 ‘망월폐견’”에 대해 기사화했다. 실상 누구도 저 정확한 의미를 몰랐던 때문이기도 할 테다(과연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이들 중에 저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물론 보수 언론들은 이제 그에 대해 절대 기사화하지 않는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글이 언제부턴가 공평정대해 보이지 않는 언론 기사에 대해 칼날 같은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전에 바로 그 지면에다 역사 칼럼을 연재하고, 공영방송에 나와 개별 코너를 진행할 만큼 상호 친화적이고 우호적 관계였다. 결국 그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역사학자로서의 소명에 따른 그의 행동이 가져온 불화, 혹은 갈등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신문, 혹은 하나의 방송에 노출되어 한정된 정보를 접하기 쉬운 누군가에겐 대단히 불행한 일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은 그렇듯 폭넓은 정보를 접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이들을 위해 기획되고, 출간되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정의와 정의’였다. 작가는 그때 서문을 통해 그 의미를 이렇게 밝혔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악(惡)이 아니라 정의(正義)’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악’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하지 않으며,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그러나 스스로 ‘정의’라고 판단한 일은, 아무리 잔인하고 악랄하더라도 서슴지 않고 행하곤 한다. 역사상 모든 전쟁의 당사국들은 자국의 요구가 곧 ‘정의’라고 주장했다. 역사상의 모든 대량 학살도,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지만, 그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도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다. 차라리 ‘내가 곧 정의다’나 ‘힘이 곧 정의다’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설득력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정의란 주장하기 나름인 개념일까? 사랑이라는 개념을 정의(定義)하기 어렵더라도 그것이 실재(實在)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정의(正義) 역시 그렇진 않을까? 한자어 정의(正義)의 문자적 정의(定義)는 ‘바르고 옳음’이며, 사전적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다. 한국어에서 ‘옳다’와 ‘바르다’는 다른 의미가 아니다. 사전적 정의를 안다고 해서 정의의 본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무엇이며 올바름이란 또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기가 ‘정의’의 편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들지만, 정의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감성으로 한다. 그래서 정의감(正義感)이다. 정의는 논리적으로 구축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형성되거나 전승된다. 정의감을 학교에서 배워 익혔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감성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또는 현실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자극받고 키워진다. 어쩌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DNA에 각인된 감성일 수도 있다. 정의감은 인류 공통의 감성이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감성이다. 특히 사회가 고도로 분화하고 이해관계가 극도로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에서 ‘정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파편으로 쪼개져 버린다. 갈등과 대립의 현장마다 서로 다른 ‘정의’들이 충돌한다. 현대인의 정의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신(新) 사자성어는 ‘내로남불’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학자 전우용이 생각하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인 셈이기도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