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제: 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연보" 수록 인쇄자료(책자형)로도 이용가능 접근방법: World Wide Web 이용가능한 다른 형태자료:수리남 곤충의 변태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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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과학하는, 예술하는, 여행하는 여성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랩 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엮어낸 모험과 관찰의 세계
여성 과학자는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과학의 역사에서 지워졌을 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기억하는 것은 곤충의 성장과 번식 과정을 먹이를 포함한 하나의 생태계로 보여주는 최초의 곤충학 책을 갖게 되는 것이자 정확한 관찰이 중요한 서구 근대 과학 발전에 수공예 기술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숨 막히게 아름답고 정교하며 실용적이기까지 한 이 책의 글과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지워진 여성 과학자들의 이름으로 새로운 과학사가 쓰인다면 그 역사가 만드는 과학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가슴 뛰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_임소연(과학기술학 연구자)
이름이 곧 장르가 되어 버린, 자연사 일러스트의 선구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작품을 만나길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현대에 과학 일러스트는 사진으로 대체 가능한 이미지라거나 과학 연구의 필수 아닌 선택적 기록물이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나는 이 책이 과학 일러스트를 향한 오해와 편견을 무참히 깰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름답다거나 정확하다는 수식어로는 한참 부족한, 자연의 생동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의 작품을 통해 저 먼 수리남 열대우림 속 생물들의 삶을 코앞에서 관찰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_이소영(식물세밀화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활동하던 시대에 여성 화가들은 소재만이 아니라 재료 사용에 있어서도 제약이 따랐다. 남성 중심의 길드 체제는 여성 화가들이 역사화에 참여하거나 유화를 다루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세밀화처럼 작고 섬세한 작업은 덜 중요한 예술로 여겨졌지만 오히려 이러한 통념적 위계에 개의치 않고 독보적인 세계를 만드는 작가가 있다. 《수리남 곤충의 변태》는 식물학자이며 곤충학자인 메리안의 끈질긴 관찰력, 화가로서 집요한 표현력, 탐험가로서 용감한 모험심이 집약된 역사적인 결과물이다. 작은 세밀화의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_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끝자락을 살아간 한 여성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뒤 예술과 출판을 하는 집안에서 자라며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즐겨 그리던 사람.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아 기르는 와중에 좋은 집안의 여성들에게 그림과 자수를 가르치며 자신의 글과 그림을 책으로 펴낸 사람. 남편을 뒤로한 채 라바디파 종교 공동체에 기거하며 나비가 되기를 준비하는 번데기 같은 시간을 보낸 사람. 데카르트가 ‘이곳처럼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하고 감탄했던 바로 그 도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지식인 및 예술가와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한 사람. 쉰두 살의 나이에 머나먼 남아메리카의 수리남으로 떠나 곤충을 관찰하는 모험을 기획하고 감행한 용기 있는 사람.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자신의 연구를 책으로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을 감당한, 비즈니스 우면의 면모도 여실히 보인 사람.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수리남 곤충의 변태(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1705)는 메리안이 둘째 딸 도로테아를 데리고 2년간 수리남으로 여행을 떠나 살아 있는 곤충들을 관찰한 뒤 양피지에 그린 60점의 그림과 그에 관한 글을 엮은 작품으로, 곤충 연구자이자 화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그녀의 대표작이다. 당시의 많은 연구자들이 권력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때로는 그들과 함께 아메리카를 여행한 반면, 메리안은 나이 든 여자라는 이유로 그러한 혜택을 누리기가 어려웠다. 몇 차례 후원을 청해 간신히 (후원이 아닌) 대출을 받은 그녀는 자기 자산을 정리하고 유언장까지 작성한 뒤 수리남으로 향하는 상선 평화호에 탑승한다.
곤충에 ‘꽂힌’ 50대 여성 과학자이자 화가, 남아메리카의 수리남으로 관찰 여행을 떠나다
수리남에서 메리안은 2년간 동식물을 관찰하여 스케치하고, 각종 표본을 만든다. 이는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수리남의 더위가 문제였다.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 빽빽하게 우거져 있는 엉겅퀴와 가시덤불도 문제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새로운 곤충을 발견하고 이를 기록하는 기쁨이 있었다. 자그마한 곤충의 생김새, 무늬, 털의 빛깔까지 관찰했고, 때로는 자신이 머물던 집 정원으로 곤충을 가져와 키우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메리안은 열대병에 걸리고 만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 계획했던 3년의 여행을 단축한 채 그녀는 딸과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다. 메리안을 돌보기 위해 원주민 여성 한 명도 같이 배에 올랐다. 수리남에서 관찰한 것을 책으로 펴내기까지는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자신의 기록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기도 했거니와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 수리남 여행에 들었던 경비를 갚으려면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출판업자의 집안에서 성장했고 줄곧 자신의 책을 펴내왔으니, 요즘 말로 치면 ‘독립출판’에 자신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출판업자들이 그렇듯 수익을 장담할 순 없었다. 그녀 자신이 서문에 밝혔듯 책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에 놀라 단념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을 만큼 나름의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메리안은 그림을 그리고 원고를 쓰는 와중에 암스테르담의 신문에 광고도 하며 책의 존재를 알려 나갔다. 다행히도 출판은 대성공이었다. 메리안은 이번에 출간한 한국어판의 모본이 된 네덜란드어판, 그리고 라틴어판을 동시에 출간했다. 전자가 네덜란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네덜란드 바깥의 유럽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을 터. 러시아의 표트르대제를 비롯하여 나라 안팎의 많은 이들이 메리안의 책을 사들였다. 연구자를 비롯하여 타국의 동식물에 관심을 갖는 애호가들도 매료시키는 책이었다. 물론 신항로를 타고 전해오는 머나먼 타국 물정에서 느끼는 호기심이 그들의 기저에 있었을 것이다.
열대 곤충과 그 먹이식물을 함께 그린 60컷의 그림, 이에 대한 정밀한 관찰의 기록
무엇보다도 《수리남 곤충의 변태》의 그림에서는 메리안의 기획이 돋보인다. 그녀는 하나의 곤충이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성충이 되기까지의 모습을 그 먹이식물과 함께 한 장의 그림 안에 담아냈다. 곤충의 일생을 한눈에 들어오게 작업한 것이다. 현대의 연구자들이 그녀의 그림에서 생태주의적 세계관의 맹아를 보는 듯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획 때문이었다. 또한 당대에 출간된 많은 동식물지(動植物誌)들에서 그림이 동식물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메리안은 자신의 그림이 그러한 용도로만 쓰이기 않기를 바랐다. 전자의 그림 상당수에 설명을 위한 숫자나 글이 여럿 덧붙여진 반면, 메리안은 그러한 것들을 화폭 안에 들이지 않고 그림 자체로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고자 한 것이다. 이는 동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취미로 이를 애호하는 이들까지 독자로 염두에 둔 메리안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메리안의 아이디어와 예술적 재능 때문에 곤충 연구자로서 메리안의 업적이 다소 덜 부각되기도 한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협회(Maria Sibylla Merian Society)의 창립자인 생물학자 케이 에더리지(Kay Etheridge)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실제로 많은 자연주의 삽화가들이 메리안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만큼이나 후대 생물학자들이 그녀를 기리며 여러 동식물의 속명 등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린네의 이명법(二名法, binomial nomenclature)이 확립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메리안의 섬세하면서도 정밀한 곤충 연구는 이후 많은 이들의 연구에 초석 중 하나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또한 《수리남 곤충의 변태》에 현지인, 특히 현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깃들어 있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식물과 곤충을 음식으로 또는 약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기록하는 등 메리안의 연구에는 동시대 여성들이 보여주곤 했던 동식물에 대한 실용적 관심 또한 드러나 있다.
주변부에 있던 한 인간의 삶과 업적, 20세기에 들어 새롭게 조명되다
당대에 일약 암스테르담의 저명인사가 된 인물이지만 이후로 메리안의 존재는 희미해졌으며, 그녀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살아생전에도 여성이라는 점이 하나의 장벽이었는데, 바로 그 점이 그녀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에 대한 관심이 일면서 그녀가 새로이 호명된 것이다. 메리안에게는 이 외에도 여러 장벽이 있었다. 그녀가 국민국가가 건설되기 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이라는 점은 현재의 독일과 네덜란드가 모두 그녀를 오롯이 자신의 시민으로 기리는 데 다소 문턱이 되기도 했다. 또한 둘째 딸 도로테아가 메리안의 작품 중 상당수를 러시아로 가져가면서 그 작품들이 다수 러시아에 보관되어 있는 점도 그녀의 활약상을 연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이 여성의 얼굴은 결국 독일의 지폐와 우표에 새겨졌고, 구글은 그녀의 생일에 기념 로고를 제작했으며,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신의 작품 《홍수의 해》에서 그녀를 성인(聖人)으로 등장시켰고, 롤플레잉 게임 ‘대항해시대’에서는 모험하는 캐릭터로까지 만들어냈다. 그녀의 그림이 뉴욕과 런던의 경매에서 고가에 판매된 것은 물론이다. 오래전 한 여성이 성취해낸 이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매력적인 한 인물을 비롯하여 그녀가 보여준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