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제: ふくしま原發作業員日誌 : イチエフの眞實, 9年間 の 記錄 인쇄자료(책자형)로도 이용가능 접근방법: World Wide Web 이용가능한 다른 형태자료:최전선의 사람들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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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무노 다케지 지역 민중 저널리즘상 대상 수상★ ★제42회 고단샤 혼다 야스하루 논픽션상 수상★ ★제20회 이시바시 단잔 기념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 장려상 수상★
치사량의 방사선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달려간 기자, 집념 어린 취재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진실을 좇다 2022년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탈원전 정책 전면 폐지”와 “원전 최강국 건설”을 에너지 정책으로 내세웠다. 바뀌는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중단됐던 신한울 3, 4호기는 공사를 재개했고, 원전 관련 주식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원전이 ‘녹색 에너지’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핵에너지가 싸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라는 주장은 절반만 맞다. 이는 ‘사고 전’에만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고 후’에 원전이 미치는 영향은 돌이킬 수 없고 후속 조치에 드는 시간적, 경제적, 환경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지금 후쿠시마에서 첨예하게 벌어지는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갈등은 11년 전 발생한 재난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2011년 3월 11일,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 3, 4호기가 폭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만 톤의 냉각수로도 식힐 수 없는 핵연료가 원자로의 밑바닥을 녹이는 노심 용융이 발생하고, 저자는 수어 분 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방사선이 원자로 내부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현장에 달려간다. 로봇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고장 나는 지옥의 현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11년이 지난 2022년 현재도 여전히 수습 중이며, 이 과정이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원자로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은 공기 중으로, 토양 내부로, 해양으로 방사능을 계속 내뿜고 있다. 책에서는 수년째 현재 진행 중인 무시무시한 사고 현장과(“2015년 4월 로봇 조사에서는 격납용기 내부에 최대 시간당 9,700mSv의 초고도 방사선량이 존재해 사람이 40분만에 사망하는 수준이라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 사고를 축소하고 은폐하는 데 급급한 정부, 비용 절감을 이유로 가벼워지는 장비와 임금을 고수하는 도쿄전력이 등장한다(“현장의 방사선량이나 오염은 달라진 게 없는데 점점 장비를 완화하니. 지진도 잦고 언제 위험한 사태가 터질지 모른다. 그때는 이미 늦다”). 막을 수 있었던 거대한 인재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인간과 서로 책임을 떠미느라 급급한 관계 부처들의 모습(“…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도쿄 전력과 후생노동성 상담 창구에 전화를 했으나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다’, ‘노동 기준 감독서로 가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은 집과 땅을 잃고 피난을 떠나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세계 6위의 원전 보유국이자 국토 면적당 원전 수 세계 1위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원전 사고는 다른 나라의 일이 아니다. 특히 이웃한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원전 사고(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국제 평가 척도 기준 최고 등급인 7등급)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도 이런 재난을 겪을 수 있다는 아득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다” 25년짜리 대출금 10년 만에 갚아 마련한 집 방사능 오염돼 기꺼이 재난에 맞선 개개인의 드라마 원전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치사량에 달하는 방사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왜 도망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피폭되어 암이나 백혈병 같은 무시무시한 병에 걸려 이른 나이에 고통스럽게 사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현장에 남아서 이 모진 일을 하는가. 돈 때문일까? 지금까지 신문 기사나 정부의 보도 자료에는 작업자들이 수치로만 존재했다.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도 소수이고, 만약 이름으로 불린다면 불행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예컨대 최초로 암으로 산재를 인정받는다든지 최초로 현장에서 사망한 이가 되었을 때에야 무명씨에서 이름을 가진 자로 등장할 수 있다. 그렇게 작업자들은 변두리로 밀려나,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재난 현장을 수습하는 이들은 정부도, 도쿄전력도 아닌 바로 작업자들이다. 이 책은 현장의 최전선에 선 작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작업 일지’라는 형식을 빌려 그들에게 마이크를 쥐여준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상황을 전하는 글들은 현장성과 더불어 그들의 절박함과 바람과 희망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이웃을 위한 자긍심으로 일하고(“우리 힘으로 고향을 되찾고 싶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사회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으로 일하며(“원전에서 일해왔다는 책임감이 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후쿠시마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기대하며 일한다(“피폭은 우리가 당하는데 돈은 회사가 다 가져간다”). 저자는 원전에서 일하는 100여 명의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노력이 모여 거대한 참사를 막아내는 방파제가 되었음을 이 책에서 증명해낸다.
그날의 참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람을 지키는 국가를 바란다” 이 책은 대형 재난이 터졌을 때 국가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한다. 엄청난 인재 앞에서 국가는 사고를 축소하고 은폐하기 바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사고의 심각성을 은폐하는 용어를 자의적으로 만들어 쓰고(“2016년 5월에는 원전 사고 당시 도쿄전력이 노심 용융을 ‘노심 손상’으로 설명함으로써 상황을 은폐했음을 인정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안전은 뒤로한 채 보여주기식으로 장비를 완화하는 동안(“왜 지금 방호 장비를 완화하려는지 모르겠다. 그저 현장 상황이 이 정도까지 좋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아니겠나?”) 탱크에서 흘러넘친 오염수를 쓰레받기로 퍼내는 것도, 자디잔 잔해를 일일이 삽으로 퍼 제거하는 것도 사람이 했다. 그러나 다중 하청 구조에서 임금을 떼이고 피폭 위험을 감수하며 일해도 산재를 증명하는 몫까지 모두 작업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 현장은 정치에 휘둘리기 일쑤였다(“선거가 끝날 때까지 위험한 작업은 하지 마라”, “담당 장관이 모레 해외에 나가니 오늘 중으로 작업을 마치라”).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날아드는 작업 지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정부의 실수는 그간의 수많은 참사들을 연상케 한다. 저자는 국가가 감당하지 않는 책임을 오로지 개인이 떠맡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촘촘한 기록으로 엮었다.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는 있다. 이는 이전 참사의 원인과 후속 조치의 문제점을 복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10여 년간 쉬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복기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