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이야기의 특수한 한 형태이다. 이것은 소설이 무엇보다 하나의 서술 행위에 의해 생산된 담화임을 의미한다. 모든 소설은, 보이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서술자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이라는 허구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사건들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서술자의 특정 관점에 의해 제시되어 있다. 소설의 서술자는 자신의 어조 및 심리적 태도의 수위를 조절하거나, 자기 말 속에 다소간의 뉘앙스를 부여함으로써 독자에게 자신의 관점을 표명할 수 있는 존재이다. 소설의 허구적 저자라 할 수 있는 이 서술자는 소설 속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신과 흡사하다.
그런데 이 전지적 위상의 서술자는 현실의 작가도, 허구 속의 한 인물도 아니다. 서술자는 소설 텍스트 내부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로서의 하나의 기능 혹은 역할이다. 본 논문은 까뮈의 『이방인』 속에서 이러한 위상의 서술자를 규명함으로써 이 소설의 의미 체계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네트로 대표되는 서술이론은 소설 속 서술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 방식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주네트의 서술 담화 분석은 텍스트 속에 명시적으로 재현되는 서술자만을 서술자로 지칭한다. 이런 이유로, 다양한 서술 유형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네트의 서술 이론은 보편적인 서술 이론으로 간주될 수 없다. 게다가 서술 이론의 서술자 개념은, 『이방인』의 1인칭 서술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과 서술자가 동일하다는 의미의 '자전적' 서술자인 뫼르소의 특성들을 모두 고려하지 못한다. 전통적인 1인칭 서술자와 확연히 다른 성격을 보여주는 뫼르소는, 주네트의 서술 담화 분석 작업 속에서 제대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뫼르소의 서술 행위의 가장 중요한 특성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서술자 뫼르소의 서술 시점이 복수라는 것과, 상황의 단순한 묘사에 국한되는 그의 담화는 주관적 가치부여를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방인』 의 근원적 속성이기도 한 이 모호한 서술행위는, 1942년 출판된 이후 수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 비정상적인 서술행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후반부로 진행되어 갈수록, 뫼르소는 독자와 공모 의식을 형성해간다. 즉 독자는 '살인자-뫼르소'에 대한 정당화와, 관습적 가치 체계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관점을 점차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독자는 뫼르소 담화의 수사학적 효과를 통해 이러한 관점을 인지하게 된다. 이같은 결과는 비일관적이고 모호한 서술행위 뿐만 아니라, 일정한 방향을 가진 관점 역시 이 이야기의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요소의 공존은 『이방인』 속에 하나의 모순적 요소를 형성한다. 이러한 모순은 또다른 의문, 즉 이 모순을 해소하고 『이방인』 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과연 명시적 서술자 뫼르소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서술자의 객관적 담화 속에는 결코 그의 무고함을 명시하는 파롤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지적할 점은, 자기 정당화의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서술자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동정적 관점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도는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를 처음부터 알고 있고, 이것을 독자에게 부과하는 또다른 주체의 책임으로 돌려져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언어학적 또는 기호학적 발화(자) 개념이 개입한다. 즉 하나의 발화문은 발화행위의 산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발화주체, 즉 발화자를 엄밀한 의미의 언어학적, 보다 넓게는 기호학적인 하나의 기원으로 간주한다. 이 기원은 발화문의 존재에 의해 논리적으로 전제되지만, 있는 그대로 발화문 속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담화 속의 흔적을 통해 추정될 뿐이다. 이처럼 발화자란, 발화문을 가능케 하는 주체이지만, 발화문 속에 포함되지 않고 그 뒤로 사라지는 기원, 즉 필수불가결하지만 결코 알 수 없는 그러한 기원이다. 독서의 대상으로서의 모든 텍스트는 하나의 발화문을 구성한다. 모든 발화문이 이처럼 보이지 않는 발화자를 전제한다면, 텍스트 속에 드러나는 '나'는 발화문의 주체일 뿐, 진짜 발화주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한 인물이 '나'라고 말하는 1인칭 소설은 그 발화자의 이미지를 명시하지 않고, 훨씬 더 암시적으로 만드는 텍스트이다. 따라서 발화자가 발화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의 관점, 입장, 태도를 표현한다는 것이지 결코 명시적 말을 소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요컨대, 한 소설의 가치 판단의 원칙을 구현하는 자는 바로 이 발화자이고, 발화문 속에 나타나는 서술자 '나'는 이 발화자의 직접적 대리인이다. 서술행위 뒤로 사라지는 발화자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기 때문에, 발화자를 모사하는 이 서술자가 진짜 발화자처럼 보인다. 이처럼 소설의 발화자를 가정한다면, 그 상대방인 피발화자 역시 가정해야 한다. 발화자의 조종행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피발화자를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본 논문은 사형 집행을 목전에 둔 감방 속의 뫼르소를 『이방인』 의 서술자로 전제한다. 이러한 가정에 따르면, 이 소설은 엄마 죽음으로부터 살인과 재판을 모두 경험한 이후 자신의 과거를 돌이키는 사형수 뫼르소에 의해 생산되는 담화가 된다. 이때 이 회고하는 뫼르소는 허구의 사건들을 처음부터 모두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발화자와 가장 가깝게 위치할 수 있다. 그러나 회고적 시선의 주체라 하더라도 감방 속의 뫼르소는 이 텍스트의 발화자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고, 단지 발화자를 모사하는 대리인이다. 근원적 서술자로서의 발화자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고 동시에 뫼르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명시적 서술자 '나'를 텍스트 속에 설정한 것이다. 이때 『이방인』 속의 모순은 이 작품의 전체적 의미작용 속에 통합된다. 이 모순은, 자신의 과거 체험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이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역설적 조건하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위해 뫼르소가 채택하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이방인』 의 상궤를 벗어난 서술행위는 바로 이러한 역설에서 비롯한다. 이와 동시에 뫼르소는 자신의 부정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들을 드러내려는 의도로써 이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이 가치들은, 통념에 대한 감각적 삶의 우월성과,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로 요약된다. 이야기의 서술 상황을 암암리에 정당화시키는 이러한 구성 작업들을 통해, 『이방인』 은 균형잡힌 하나의 타당한 이야기로 자처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발화 기원이라는 개념은, 텍스트 속에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텍스트가 '의미하는 것'을 통해 소설이라는 문학적 담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다. 나아가 발화자 개념은, 서술자와 피서술자 차원의 서술 기원만을 포함하는 서술이론적 이야기의 틀을 확대시켜, 발화자와 피발화자(가능 독자)간의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텍스트 속에 설정한다. 이 관계는 텍스트의 의미를 텍스트 세계와 독자 세계 간의 상호교차로 파악함으로써, 텍스트의 진정한 위상을 회복시켜준다. 결국 『이방인』 에서, '무고한 살인자'로서의 뫼르소에 대한 독자의 연민을 유도하고, 법정으로 대변되는 인위적 사회를 비판한다는 이중의 목적은 바로 이 발화자, 즉 명시적 서술자보다 위계적으로 상위에 위치하는 발화자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 중에서 이 발화자의 조종 행위에 기꺼이 동의하는 독자가 이 발화자의 진정한 상대, 즉 『이방인』 의 피발화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