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디자인의 역사 속에서 기술의 진보에 의한 새로운 소재나 도구의 발명이 디자이너로 하여금 이전 제품들을 재해석하게 만들고 보다 독창적인 것을 고안하도록 자극해온 사실에 주목하고, '도구의 변천에 따른 디자인의 변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구체적으로 제품 디자인의 역사에서 디자인의 생산 과정에 사용되어진 도구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이러한 도구의 발달이 제품의 디자인에 직접 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한 추적으로 이어졌다. 연구의 대상으로 한국인의 식생활에 필수 용구인 숟가락을 선택하여, 금속 성형 도구를 중심으로 도구의 발달과, 숟가락 디자인의 변천을 동시에 조사하였다. 숟가락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하고 대중적인 생활용품이면서도 그것의 디자인이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고, 한국 숟가락 디자인의 역사를 정리해 보고자하는 동기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러한 숟가락 디자인의 변천 과정의 고찰을 통하여 변화의 주요 요인으로서의 도구의 역할을 확인해 보고, 이를 통해 디자인과 도구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를 갖는데 그 목적이 있다하겠다.
본 논문에서는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는 숟가락 제품의 디자인의 변화 과정을 효과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기술과 생산 체제의 변화에 따른 구획으로서 '수공예 시기, 산업화 시기, 디지털 시기'의 세 시기로 분류하여 통시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기본적인 연구의 틀을 가지고 진행되는 본 연구는 크게 5개의 장으로 나누어진다.
제1장에서는 본 논문에서 하고자 하는 연구의 배경과 목적, 그리고 방법에 대해 논한다. '제품의 생산 도구의 발달과 그에 따른 한국 숟가락 디자인의 변천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구성에 관한 설명의 장이다.
2장에서는 본 연구에서 사용되어지는 어휘의 개념과 범위의 한정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진다. 숟가락이라는 단일 제품의 디자인 제조 공정에 사용된 도구의 역사를 살피는데 있어, '생산'의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생산의 과정'을 '디자인의 과정'으로 정의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도구'라는 용어는, 용구나 이기로서의 의미라기보다, 디자인 행위와 디자인 과정에서 필요로 하고,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사용되고 개발되어진 보다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도구를 의미한다.
3장은 대부분 자료 수집 조사의 결과를 정리한 비교적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장으로 연구의 배경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청동기 시대(기원전 6-7세기 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뼈로 만든 숟가락에서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 숟가락 제품의 역사를 살펴보면, 상고시대의 숟가락은 주로 청동제품이었고 이후 놋쇠제품, 백동제품, 은제품으로 변천되었으며, 형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초기의 숟가락 형태는 어떤 특정한 양식을 갖지 않은 부정형의 양식으로 요약된다. 삼국시대에는 긴 자루에 큰 술잎이 특징이었고, 고려 초기의 것은 술자루가 크게 휘어졌고, 중기의 것은 술총이 제비꼬리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제비꼬리가 없어지고 술자루도 덜 휘어지면서, 술잎은 나뭇잎 같은 타원형을 이루었다. 이때 숟가락의 잡는 쪽이 점점 기울어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산업화 이전의 숟가락의 디자인을 종합해 보면 유기적인 형태, 불규칙적 선, 장식적 디테일, 심미적 요소 등을 그 양식적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근대 이후의 산업화 시기의 숟가락은 장식이 없어지며 단순하고 균일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기계 미학의 제품들로 변화된다. 디지털 시기로 접어드는 현재에는 기능적이고 균일하면서도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의 심미적인 디자인의 숟가락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각각의 시기에서 사용된 도구들을 살펴보면, 수공업 시대에서는 한 사람의 장인의 머리 속의 아이디어가 그의 손과 감각을 통하여 전 과정을 지배하므로 이 시기의 디자인 과정의 도구라고 하면 주로 실제 제작에 사용된 공구, 즉 주로 손도구들이 주를 이룬다. 숟가락 디자인에 사용된 도구들은 주로 망치, 모루, 정, 주물 도구인 화덕과 도가니, 집게 등을 들 수 있다. 기계화시기에 와서는 디자인 단계와 제작 단계가 분리되어, 디자이너가 대개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스케치를 하고, 도면을 그리고, 그것의 완성품을 짐작하여 기계가 잘 만들 수 있게 모형을 제작하는 공정까지 관여한다. 여기서 디자인의 구상(설계) 단계에서는 주로 연필, 종이, 마커, 각종 자 등의 기초적인 미술 도구를 사용하고, 모형은 주로 깍기 쉬운 나무나 석고, 혹은 스티로폼 등을 조각도를 이용하여 손으로 제작한다. 그리고 제조 공정은 공장으로 넘어 가서, 금형이 제작되고, 직공에 의해 조종되는 기계들에 의해 제조되고 가공된다. 제품에 따라 각종의 절단기, 절삭기, 조각기, 주조기 등이 기계 도구로서 사용되며, 숟가락의 제작 과정에는 주로 금형, 프레스, 압연기, 그라인더, 버퍼 등의 기계가 사용된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자인의 단계에부터 컴퓨터가 주요 도구로서 작용한다. CAM, CAD로 불려지는 컴퓨터 도구로 아이디어를 2차원, 3차원으로 표현하고, 컴퓨터 도구로 그려진(디자인된) 제품의 데이터 파일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 쾌속주형(RP)기술에 의해 직접 3차원의 모형 제작이 진행된다. 이 시기는 디자인(구상) 단계에서 부터 모형 제작, 그리고 제조 과정에 이르기까지 컴퓨터가 전적으로 관여한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해 컴퓨터 프로그램된 기계들은 제품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스스로 작업해낸다. 숟가락의 실제 제조 과정에서는 아직 전 자동화된 시스템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설계과정에서의 컴퓨터의 사용은 정착되어가고 있고, 그 외 금형 제작 과정에서도 컴퓨터의 도움을 대부분 받고 있다. 제조 과정에서는 산업화 시기와 아직 많은 차이점은 없다고 하겠다. 공장 중심의 대량생산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옛 수공예의 감각을 재현하고자 하는 현대의 중소 공방들은 손도구를 사용하는 동시에 기계와 최첨단의 디지털 도구들을 적절하게 잘 이용하며 손맛과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4장에서는 3장에서 조사 정리한 사실들을 분석 종합해보고, 도구의 발달이 숟가락의 디자인에 직접 간접적으로 미친 영향들을 평가 정리해 본다. 각 시기별 숟가락의 디자인적 특성의 제 경향을 종합해 보면, 수공예 시기와 기계화 시기의 수저 디자인에서는 손도구에서 기계도구로 전환된 큰 변화만큼이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상이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심미적이고, 유기적이고, 장식적이고 불규칙적인 수공예적 특성에 반해 기계화 시기의 숟가락은 기능적이고, 직선적이고, 간결하고, 균일한 기계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뚜렷하게 상반된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디지털 시기의 디자인적 특징은 이들 두 시기의 긍정적 특성들을 많은 부분 골고루 아우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시기별로 디자인의 양식이 뚜렷하게 달라진 요인으로서, 도구의 영향 이외에, 외래문화의 유입, 미술 사조, 기능과 목적, 시대적 가치나 이념 혹은 취향, 음식 문화, 사회적 기반 체제와 풍조, 정치 사회적 구조 등의 변화도 동시에 정리해봄으로써, 숟가락의 디자인 변천의 원인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도모하였다. 이어서 도구는 숟가락의 형태와 디자인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숟가락의 사용상의 여러 기능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숟가락의 식음용구로서의 기능은 바뀌지 않았지만, 손질과 보관이 까다롭고 사용하기도 불편했던 과거의 숟가락은 도구의 변화로 인해 관리가 수월해졌으며, 사용성이 향상되었고, 음식의 종류에 맞는 분화된 형태의 숟가락을 갖게 된 점 등을 그 도구의 영향으로 발견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용성의 향상이라는 새로운 가치는 이어 디자인 과정에 반영되고 더욱 기능적인 디자인을 탄생하게 하였다. 소수의 지배층의 향유물이었던 금속제 숟가락은 기계화시기를 맞으며 사용자의 범위가 해제되면서 일반인들도 금속제 수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어 대중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 디지털 시기에 이르게 되었다. 도구의 변화는 숟가락의 디자인에 있어 직접적으로는 숟가락의 양식과 기법 상의 변화를 불러 왔으며, 간접적으로는 숟가락의 사용성에의 변화와 사용자의 변화를 초래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간접적인 영향들은 새로운 디자인상의 가치를 창출하여 디자인 니드의 변화를 창조하고, 다시 새로운 디자인의 형성에 반영되는 순환의 과정이 추론된다. 여기서 시기별 도구의 사용에 의한 결과로서 나타난 디자인에서의 긍정적인 부분과 파생된 문제점에 대한 평가를 해보고, 해결의 대안으로서 디지털 도구의 올바른 사용을 제안하였다. 또한 이를 통한 인간 감성의 회복과 우리의 일상생활 문화의 질적 향상도 기대해보았다.
마지막 장에서는 본 연구의 의의에 대해 평가해 보고 앞으로 이어져야할 연구에 대한 제안과 과제에 대해 논의한다. 시기별로 상이한 생산 과정에서의 도구와 디자인적 특성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한국의 숟가락 디자인이 변천되어온 과정을 정리해 볼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디자인적 특성의 비교 평가와 앞으로 변화되어갈 방향 등도 전망해 볼 수 있었다. 수공예 시기의 숟가락과 산업화 시기의 그것은 디자인적으로 뚜렷하게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었고, 디지털 시기로 넘어오면서 이 두 시기의 절충된 모습으로 형성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기계화 시기의 제품의 장점들은 이어지고, 부족했던 속성들은 수공예의 장점들로 대체 보완되는 모습으로 나아가면서, 소비자들의 욕구가 충족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디지털 이라는 새로운 도구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것으로 해석하며, 앞으로도 디자인적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서 올바른 도구의 사용은 질적으로 향상되고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제품 문화의 형성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숟가락 디자인 변천의 제경향의 조사, 분석을 통하여, 우리의 숟가락에 대한 관심을 도모하고, 디자인과 도구의 깊은 관계성과 동시에 디자인 변천의 한 요소로서의 도구의 역할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