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文人畵)는 동양의 고유한 회화예술이자 시(詩)·서(書)·화(畵) 일체(一體)의 종합예술로서 서구의 어느 문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 방식과 더불어 정신적 내면세계의 격(格)을 추구하는 고도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인화는 예로부터 문인(文人) 사대부(士大夫) 등 지식계층에 의해 여기(餘技)로서 즐긴 그림이며, 현대에 이르러 전문적인 직업 및 아마추어 화가들에 의해 널리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시대나 그리는 주체는 바뀌었어도 일맥상통하는 문인화의 진정한 개념은 각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인품과 학식을 갖춘 작가가 어떠한 화풍이나 소재, 기교에 구애받지 않으며, 외적인 형사(形似) 즉 객관적인 사실묘사를 떠나 작가 내면의 정신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흉중(胸中)의 일기(逸氣)를 사의(寫意)적으로 격조(格調)있게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인화는 중국으로부터 처음 전래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와서 유학자(儒學者)들에게 수용되어 화원(畵員)이나 왕공(王公), 사대부(士大夫), 승려(僧侶) 등에 의해서 소극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문인화가들에 의해 중국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 말기에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그를 추종하는 그의 일파(一派)들 즉 조희룡(趙熙龍, 1789~1866), 김수철(金秀哲, ?), 허유(許維, 1809~1892), 유숙(劉淑, 1827~1873) 등에 의해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이들의 화풍(畵風)은 당시 화단(畵壇)을 완전히 지배하였고, 사의(寫意)를 존중하는 문인화를 크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문인화를 발전시키고 주도해 나갈 문인사대부들은 회화에 대한 천기사상(賤技思想)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림의 제작과 화론(畵論)을 회피하였고, 이로 인하여 문인화는 회화상의 형식화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후기부터 활발하게 유입되었던 중국제 화보류(畵譜類)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감에 따라 더욱 가증된 듯하다. 특히 중국의 역대화법(歷代畵法)에서 받아 그릴 것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김정희의 주장이 화단의 중국화(中國化)를 더욱 조장했으며, 그로인해 문인화의 발전은 한계에 봉착(逢着)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근·현대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많은 문인화가들에 의해 한국의 현실에 맞는 자주성을 갖는 예술로서의 문인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연구와 실험을 거듭해 왔으나, 그 소재와 기법면에서 정형화·양식화되고 있어, 현대의 다양한 미술 영역의 흐름 속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문인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현대 문인화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서구적 미학과 그 양식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여기(餘技)로 하는 소극적인 회화관(繪畵觀)을 버리고, 새로운 안목과 시대적 작가 정신을 가지고 독립된 회화로서 양식적인 실험을 보다 대담하게 추진하는 적극적인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되어 진다. 이때 비로소 전통 문인화 정신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서 현대 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 구체적인 방법적 제시로 첫째, 소재(素材)의 다양성으로 현대인의 의식과 정서를 반영하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살아 숨 쉬는 일상적 소재와 현시대의 이슈 등 소재의 범위를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추상성의 확대이다. 청신(淸新)한 정신성과 조형적인 간결성, 그리고 구체적인 형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문인화의 특징을 서구적인 조형 개념에 대입시키는 작업을 시도하고, 또한 이를 현대적 추상 언어와 접목했을 때 새로운 조형성의 창출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셋째, 묵(墨)·채(彩)의 현대적 표현방법 및 다양한 실험도구를 통한 실험 작업의 연구이다. 묵·채는 먼저 민족전통예술의 경험과 특징을 바탕으로 현대적 미감에 맞는 색채에 관한 많은 연구와 경험의 결과를 더하고, 실험적 도구 및 재료를 통하여 서구의 경험도 수용하며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넷째, 다양한 현대적 소재들에 맞는 화제(畵題) 즉 한글 화제의 적극적인 수용이다. 국민 대다수가 한글세대인 것을 감안 할 때, 이는 문인화의 저변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한글 화제 및 낙관의 조형성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화면의 중요한 조형요소로서 자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방법적 제시는 작가 자신의 깊은 인격적 수양과 더불어 다양한 이론과 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과 관심, 성찰의 바탕아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 문인화가는 과거와 현재를 또한 세계를 조망함으로써 넓고 먼 시야를 가지며 깊은 사색(思索)과 연구, 도덕적 품격(品格)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문인화는 한국의 전통 문인화 정신에 근거를 두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신성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문인화의 현대적 변혁(變革)이 이루어진다면, 현대 미술로서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동양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세계미술 속에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