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의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에서는 본격적으로 저성장체제로의 진입이나 산업구조의 서비스화 등 다양한 구조적 전환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기술인력 노동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인력 노동시장 수급 구조에 있어서 주요 특징을 파악하고 수급 불균형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분석하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논의가 기술인력 수급 불균형의 주요 원인이나 핵심 문제라면, 그 기피 현상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 대처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가 21세기 경쟁력 확보의 핵심 요소로 등장한 기술과 지식의 원활한 축적과 확산을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인 기술인력 수급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기술인력 노동시장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공계 기피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먼저 이공계 인력의 대표 직종인 산업기술인력에 초점을 맞춰 그 노동시장 수급 구조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고 그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기술인력 수급불균형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인력의 공급 기피 현상 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평균임금이 낮을수록, 이직률이 높을수록 수급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산업기술인력 수급불균형 수준은 기업의 보유인력만족도가 낮을수록 높아져, 인력의 질적 미스매치가 중요한 요인의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산업기술인력의 공급 기피를 대표하는 변수인 이직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해 본 결과에서도 임금이 높을수록, 근로환경이 좋은 대기업일수록 이직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근로조건 변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뚜렷이 나타났다. 이는 공급 기피 현상이 산업기술인력 수급 불균형의 주요 원인이 되는 점과 맞물려 이공계 기피 현상의 원인이 불만족스러운 근로조건이나 열악한 근로환경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산업기술인력의 근로조건(임금)과 노동 강도(근로시간), 고용안정성(근속년수 및 직장유지율)을 사회과학 전문 직종 및 기타 전문직종과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공계 졸업생들이 취업할 확률이 가장 높은 산업기술인력의 경우 장시간 근로로 대표되는 강한 노동강도와 노동시장 진입 초기 및 고령층에서의 낮은 고용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근로조건인 임금 역시 비교 대상 전문가 집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공계 기피 현상이란 특별한 사회적 추세나 유행, 혹은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주체의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공계를 거쳐 노동시장에 진출했을 경우에 기대할 수 있는 근로조건 자체가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제주체라면 당연히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으려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전공자나 공학기술자에게 상당한 임금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산업기술인력 노동시장에서는 이공계 기피를 가져올 정도로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다음과 같은 우리나라 기술혁신 활동의 특성들일 것이다.
① 기술인력에 대한 과소 투자 가능성: 기술혁신 활동과 교육훈련 투자 사이에서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남
② 상대적으로 과소한 연구개발투자: 산업기술인력의 상대임금과 연구개발투자 사이의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남
③ 상대적으로 기술인력의 숙련과 전문지식이 덜 중요한 '개발(development) 연구' 중심의 연구개발 활동 풍토
④ 기술혁신 활동의 과도한 편중 현상 : 전자, 자동차, 기계 등 일부 업종과 대기업 중심
⑤ 산업기술인력의 생산공정 관리 중심 활용: 고도 숙련(skill)의 필요성 저하
⑥ 질적 수급 불일치로 인해 기업의 산업기술인력에 대한 인적자원 개발투자가 저해될 가능성
이상의 연구 결과가 산업기술인력 양성 혹은 활용 정책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조정으로 이공계 기피 현상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나, 21세기 기업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산업기술인력의 중요성을 감안해 볼 때 그 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손실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좀 더 빠르게 노동시장 기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산업기술인력 정책의 방향성은 근로조건과 환경이 뛰어난 좋은 일자리(decent job)를 창출하여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는 것을 지원하는 유형의 적극적 고용 정책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셋째, 공학교육혁신 등과 같이 기업 수요에 맞춘 인력양성지원 정책을 더욱 확대하여 질적 수급 불일치 현상을 개선하는 한편, '산업별 인적자원협의체' 와 같이 기술인력 수급 주체간의 원할한 정보와 지식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기술혁신의 확산과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기초 투자의 확대 등 기술혁신 활동의 저변 확대를 통해 산업전반에서 산업기술인력에 대한 수요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