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중(吳冠中, 1919년 ~ )은 근 ·현대에 이르는 중국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중서예술(中西藝術)의 성공적인 결합은 물론 전통과 시대의식을 반영하여 새로운 동양회화의 장을 열었던, 현재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창작에 임해야 하는 예술가에게는 치명적인 중국의 정치적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적 주체성을 고수하여 예술적 업적 및 회화이론에 있어서 성공적인 예술세계를 펼쳐 나갔다.
서양화를 배우며 출발했던 오관중의 예술세계는 항주예전에서의 학습시절에 반천수(潘天壽, 1898~1971)에게서 전통회화의 특성을 익혔으며, 이와 아울러 중서예술의 조화를 강조하며, 중국화에서 부족한 형식을 서양화에서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한 스승 임풍면(林風眠, 1900~1991)에게서의 학습은 전통회화의 특징과 시적 정취를 유화 속에 반영시키는 유화의 민족화에 대한 그의 예술적 야심을 형성케 해준 바탕이 되었다. 이후 파리유학을 통하여 서양의 형식주의 예술의 원리를 본격적으로 학습하고 아울러 서양의 추상주의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여 유화의 민족화와 중국화의 현대화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반면 그가 파리 유학에서 돌아온 후 공산화된 중국 예술계의 상황은 공식적인 회화 양식으로 선포된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회화에 있어서의 형식미의 추구는 철저히 배제되었고 정치적 주제와 기교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극좌사조가 극성을 부리고 있던 어두운 시기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그가 세운 예술적 목표들이 저지와 반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갔다.
한편 1976년 문화대혁명의 종결과 1978년 등소평의 개혁정책 등 시대적 변화에 따른 예술 환경의 변화는 이전 사회주의 중국에서 가능하지 않았던 예술적 실험과 탐색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 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던 서양의 추상회화를 수용할 수 있는 창작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에 오관중은 본격적인 창작활동과 회화이론을 펼치며, 문혁의 패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이전의 화풍을 답습하는 보수적 성향의 중국화 창작에 머물러 있던 화가들과 달리 새로운 시대예술 창작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오관중은 서양의 근대 미술과 중국의 정신을 결합하고자 중국의 다양한 풍경을 서양의 매체인 유화로 그리며, 전통회화의 특징과 시적 정취를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유화는 감성적인 붓 터치와 단순하고 조화로운 색채, 풍부한 시정 등 독특한 세계를 이루어 내었다. 이는 그의 작품에서 점·선·면의 추상적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추상적 표현에 나타난 점·선 ·면은 춤을 추듯 운율적으로 움직이며 대상을 유기체로 파악, 활력과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과의 관계를 벗어난 서양 추상회화의 점·선·면과 달리 자연의 형태에서 출발하였으며, 자연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그의 추상적 표현은 서양의 추상형식을 수용하였지만 전통적인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그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성으로 자연을 생략하고 종합하면서 독립된 회화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실천의 흐름 안에서 오관중은 「회화의 형식미」와 「풍쟁부단선(風箏不斷線 : 끊어지지 않는 줄을 단 연)」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그의 대표적 회화이론인 회화의 형식미와 추상미에 대하여 그의 생각을 표명하였는데, 이는 당시 미술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회화의 형식미’라는 글에서는 당시의 정치적인 주제를 회화의 내용으로 하는 내용결정론을 반대하면서 형식을 무시하는 미술창작의 기준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중국 예술가들에게 형식미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풍쟁부단선’은 추상개념의 체계에 대한 상징성을 나타내는 오관중의 은유적 표현으로 이는 추상화 된 작품에는 항상 그 작품의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자연이라는 대상이 필연적으로 있기 마련이며, 그 자연이라는 대상과는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이것은 간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가 추구했던 서양의 추상과는 다르며, 동양의 사의(寫意)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오관중은 중국의 혼란의 격동기를 살면서 많은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에 대한 주체성을 굽히지 않으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이라는 상반되는 요소들의 성공적인 융합을 이루어내어, 유화의 민족화와 수묵표현의 근대화를 이루어내었다. 이는 유화작업과 수묵표현을 함께 병행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잘 활용하여 새로운 중국화라는 조형세계를 이루었으며, 나아가 전통회화의 가치관과 특징을 존중하면서 서양의 추상형식을 효과적으로 수용한 추상적 표현으로 새로운 유형의 중국화라는 예술적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또한 그의 회화의 형식미와 추상미에 관한 선구적인 이론은 당시 중국화단의 젊은 작가들의 적극적인 화작 의지를 이끌어 내었으며,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그의 의지와 창작에의 노력은 현대 중국화단에 있어 21세기의 선두에 선 개척자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