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설야 소설의 고유한 서사적 규칙을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한설야 소설의 정신사적 의미까지 당대적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또 하나 지금까지의 한설야 소설 연구가 지닌 맹점 중의 하나는 지나치게 단절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설야 소설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식민지 시기에 창작된 작품들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이며, 해방 이후 그의 문학 세계를 다룸에 있어서는 《설봉산》같은 대표작 몇 편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설야는 등단부터 숙청 당시까지 큰 단절 없이 지속적이며 적극적인 창작활동을 한 작가이다. 창작의 양을 놓고 보자면, 오히려 해방 이후에 더욱더 활발해진 측면도 있다. 이러한 사정 등을 고려하여 이 논문은 한설야 소설의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전시기 소설 세계를 규율 짓는 핵심적인 서사적 특질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 논문은 이를 위해 한설야 소설의 특징을 서술적 측면, 서사 구성적 측면, 의미론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서사 구성적 측면에 대한 고찰은 텍스트의 각 부분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즉 단위 사건들이 어떠한 논리적 질서와 원칙에 의해 이루어져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설야 소설은 성장의 구성 방식을 그 특징으로 한다. 성장의 구성 방식은 주제소설이 취하는 두 가지 구성 방식(대립, 성장) 중의 하나로서, 작가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성장의 구성은 크게 세 가지 하위 항목을 지니고 있는데, 첫번째는 도제 구조만이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것은 카프 시기와 해방 이후 북한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번째는 연애관계와 중첩된 지식인 계급의 성장을 다루는 경우이다. 이것은 한설야 소설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한설야 소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이러한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때 연애관계는 대중성을 성장은 이념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설야의 도제구조에서 발신자는 시기별로 비교적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카프 시기 도제구조에서 발신자의 자리에는 계급의식이 놓여 있다. 해방 이후 건설기에는 건국이 그 자리를 채우며, 6.25 이후에는 민족해방이 발신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 주인공들은 전사 되기를 행위의 목표로 삼는다. 세번째는 가족관계를 통한 성장의 구성방식으로서 이것은 일제 말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원형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성장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퇴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대의 엄혹한 상황에 맞서, 현실의 모순을 내파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서술적 측면에 대한 고찰은 인물이나 사건과 같은 스토리적인 차원의 요소들이 어떠한 중개를 통해 담론화 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소설의 매개를 담당하는 핵심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시점을 중심으로 한설야 소설의 특징을 고찰해보았다. 시점에 있어 한설야 소설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카프 시기 작품들은, 뚜렷한 작가의 세계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한 외부적 비전을 통하여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과 그들의 존재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제 말에는 내부적 비전의 다양한 양상을 총동원하여 지식인이 처한 곤경과 내면의 방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식민지 시기 한설야 소설에서 기층 민중은 외부로부터 조망되고, 지식인은 내부로부터 보여지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를 조망할 총체적인 시각과 전망이 뚜렷한 해방 이후의 소설에서는 인물-초점자를 내세운 내적 초점화의 방법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것은 서술자의 중개적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이 시기 인물들이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밀착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작가적 이념의 완벽한 구현체일 때 화자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무산자에 대한 작가의 일방적인 전유라는 한계를 갖는다. 이 시기 작품에 무산자라는 관념은 있어도 개체로서의 타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북한 소설에서 서술자의 중개적 기능이 약화되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작가의 이념을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층 본격화 된 독백, 대화, 훈시, 메타 담론의 등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작가의 이데올로기적 신념이 더욱더 확고해진 결과이다. 한설야 소설은 문체적으로 점점 풍요로워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고유어', '의성·의태어', '속담'과 같은 민족적 특성이 강한 어휘들의 사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의미론적 국면에 대한 고찰은 한설야라는 문학적 주체가 보인 표면상의 여러 굴절과 변이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존재하는 공통된 세계관의 핵 혹은 사고의 공통구조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은 한설야의 각각의 작품들을 가능케 하는 일반 조건이자, 한설야 소설들이 만들어내는 의미가 생성되는 심층 구조를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의미생성의 심층구조를 만들어내는 의미소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의미 작용의 심층구조를 드러내고자 했다. 1절은 생산관계와 생산력이라는 의미소의 관계, 2절은 과거와 현재라는 의미소의 관계, 3절은 자아와 타자라는 의미소의 관계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한설야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첫번째 의미론적 국면은 생산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생산을 구성하는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두 가지 요소 중, 카프 시기에는 생산관계가 중요시된다. 카프 해산 이후에는 점차 생산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해서, 해방 이후 북한 소설에서는 생산력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두번째 의미론적 국면은 시간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첫번째는 카프 활동 시기로서, 이 때는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적 관계를 통해 향수가 나타난다. 이 때의 향수는 현재의 불안이 불러낸 것인 동시에 유토피아적 기획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두번째는 일제말에 나타나는 향수로서, 그것은 미래의 전망과는 무관하게 과거에 대한 응시 그 자체를 통해 현재의 곤란과 불안을 회피하는 의미만을 지닌다. 세번째는 해방 이후 북한소설에 나타나는 시간의식으로서, 현재 속에 이미 이상화된 과거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이다. 이로 인해 향수가 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 때의 시간의식은 내셔널리즘에 수렴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설야 소설에서 마지막 의미론적 국면은 주체구성방식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한설야 소설의 초점자들은, 전향소설들의 초점자들을 제외하고는 단독자로서의 개인이라기보다는 집단의 한 개체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전향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나르시시즘적 자아들이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은 상상적 동일시를 통해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특성은 해방 이후 좀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적대적 타자와는 구분되는 심미화되고 이상화 된 '우리'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는 한설야의 소설을 형성해내는 서사적 규칙을 통사적 국면, 서술적 국면, 의미론적 국면으로 나누어 탐구하고자 했다. 통사적 측면에서 한설야는 성장의 구성방식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술적 국면에서는 현실의 재현을 위해 각기 다른 초점화 방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미론적 국면에서는 생산, 노스탤지어, 상상적 동일시라는 의미론적 심층구조를 형성해내고 있었다. 한설야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이념적 일관성이다. 그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며 외적으로는 큰 단절을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한번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한 바 없다. 각기 다른 시대적 환경 속에서 그것에 맞는 서사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이 견지한 신념을 작품화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