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연구대상은 학생운동에 참여한 개인의 의미체계의 구성과 정체성 형성을 포함하여 학생운동을 구성하는 급진이념의 형성과 분화를 추적한다. 특히 학생운동의 급진화, NL(민족해방)론의 확산과 주류화 요인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한다.
학생운동의 급진화와 NL론의 주류화라는 주제를 다루게 된 계기는 첫째, 주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연구가 정체·답보되어 있는 현실로부터 비롯되었다. 한국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자 학생운동의 정점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학생운동의 '급진화'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해명은 진전되지 못한 상태다.
둘째, 과도한 목적성이 전제된 역사기술과 서구의 특정한 이론을 비성찰적으로 적용해 온 선행 연구의 한계를 넘어 학생운동을 보다 분석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기존의 학생운동 연구방법론과 분석틀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을 통해 이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연구과제에 접근한다. 이를 위해 사회학에 해석학, 사회사, 구술사 방법론을 활용하여 참여자들의 주관적 의미구성의 사회·역사적 과정과 그것이 객관적 경험과 접합 되는 지점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려하면서도 참여주체의 동기와 시각, 특정한 담론의 확산과 수용과정, 특정한 목표를 인지하는 방식,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운동 목표의 긴장과 갈등 같은 문제들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해석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는 개인이 의미의 사회적 구성을 통해 자신의 욕구에 근거한 집합적 의무감을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집합적 정체성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사회적 구성의 과정, 이데올로기의 선택이자 해석 틀의 급진적인 변화인 급진화의 과정을 살펴본다. 그리고 거시, 미시적인 동원과 중위 동원 맥락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사한 가치, 도덕적 열정,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동질한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지를 살펴본다. 나아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 사회적 사건이나 모순들의 의미부여와 해석과정을 통해 쟁점과 상징적 국면을 만들어 나가는 전략을 검토하고 분석한다. 집합적 정체성의 다양한 상호 작용과 문화적 과정에 주목한 결과 학생들의 결속과 동원, 대항헤게모니의 형성은 이전부터 존재하는 조직, 비공식적 연결망, 자신들의 하위 문화적 정체성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집단적 문화와 동원 과정 간의 역동적 관계를 고려하면서 NL론의 확산과 주류화의 요인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반제적 정체성과 대중적 저항의 의미 틀 저변에 깔려있는 집단적 기억과 민족주의의 영향, 그 해석의 틀이 어떤 문화적 실천을 통해 운동적으로 재구성되는지를 분석한다.
연구의 결과 '근대주의 없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성장한 주변부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느낀 극도의 절망감과 지적 빈곤이 국가사회주의를 '비정상 국가'의 대안으로 수용한 배경이 되었음을 확인한다. 나아가 학생들의 저항과 연대의 원천을 제공했던 것은 정교화된 이념이 아니라 분노, 불의에 대한 억압, 죄의식, 부채감 같은 요소였음을 밝혀낸다. 불의는 학생들의 집합적 정체성, 인지적 프레임이 구성되는 행위동학의 핵심적 요소였던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1980년대 학생운동의 급진화가 분단체제로부터 기인한 구조적으로 제약된 급진화임을 밝혀내고자 했다.
NL론의 주류화는 주변부라는 지정학적 요인, 분단체제가 갖는 구조적 특성과 국가주의-민족주의적 내면성이라는 이념과 운동주체의 특성과 관련이 있음을 밝혀냈다. 민족주의적 현상인 NL론은 지존의 '사회적 정신'과 근접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했지만 1980년대 저항대상과는 질적으로 다른 '민주적 지배' 혹은 '정상적인 지배'의 출현과 함께 영향력이 약화 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 연구는 NL론의 확산과 주류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국 급진주의가 내장한 급진성의 한계를 새롭게 제기하였다.
이 연구가 갖는 연구사적 의의와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은 첫째, 학생운동 연구의 맥을 다시 잇는 학문적 시도라는 점 외에도 보다 엄밀하고 정치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이론과 방법론을 모색하였다는 점이다.
선행 연구와 달리 행위자와 문화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구조와 경험분석만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당대 학생들의 저항행위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의미파악, 주관적 의식의 심층적 이해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다.
둘째, 새로운 사료의 발굴과 운동참여자의 기억의 복원을 통해 소수 활동가와 운동조직, 공식문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발생하는 엘리트주의적 편향성(elite bias)을 줄일 수 있었다.
셋째, 급진이념의 등장·확산·분화 과정을 보다 엄밀하게 추적하는 한편 연구의 공백으로 남았던 급진화의 개념정의 외에도 급진화의 성격, 급진주의의 한계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해명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학생운동의 연구방법론의 확장을 위해 엄밀한 연구 시각의 정립문제, 자료수집과 활용능력의 제고, 적절한 이론 틀(모델) 내지 방법론의 적용과 개발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한단계 높은 차원의 연구를 위해 국간(cross-national)비교연구의 도입을 통한 한국학생운동의 '특수성과 보편성'의 간극을 좁힐 것과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일반 이론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이론적 연구의 병행을 제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