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아서 단토의 예술철학의 사유를 분석하고 그의 주장들이 현대미술의 실천들 속에서 타당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술에 대한 사유는 앎이 대상에 대한 지식이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 즉 개념적 규정을 통해서 대상을 완전하게 지시할 수 있는지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1960년대 중반이후로-그 이전에 세기초의 다다나 아방가르드가 있었지만-과거의 전통적인 개념으로는 예술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대상이나 행위들이 예술로서 행해지고 실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토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예술개념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다. 그의 주장의 요체는 예술개념에 대한 정의의 시도와 탐구를 통해서 예술의 종말론, 즉 내러티브로서의 예술사의 종말을 주장한다. 또한 종말이후를 '역사이후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그 특성을 다원주의로 규정한다. 따라서 논자는 그의 주장이 오늘날의 상황인 역사이후의 상황에서 현대미술의 多奇한 특성과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논자는 판단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미학의 주제였던 미와 미에서 파생한 개념들이 지닌 절대성이나 어떤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에 균열이 생긴 이후로 논의 방향은 예술과 예술적인 주제로 그것을 대체하게 된다. '미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으로 변환되고, 나아가 구체적인 개별예술들이 자신의 영역과 역할에 대해서 자문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추상적인 미나 예술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에서 구체적인 대상으로 탐구의 영역이 이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의 자의식이 진전됨으로서 그 바탕에는 예술자체에 대한 사유와 본성을 탐구하는 작업이 이론적인 관점에서 진행된다. 특히 19세기말의 현상학이 추구하는 지식의 근원성-앎의 확실성-과 일상언어를 분석하는 논리실증주의들의 주창한 개념적 명증성은 예술철학의 문제인 예술개념을 분석하도록 하는 시대적이고 지배적인 사상적 배경을 이루게 된다.
따라서 본 논문 I장에서는 본연구의 의의와 목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II장에서 본 연구의 배경을 '분석미학과 현대'라는 제목으로 미의 개념에서 예술의 개념으로 철학적 미학이 변하게 되는 역사적 변천을 추적했으며, 역사적으로 예술작품을 통한 미의 개념에 대한 분석들이 제시하는 것이 하나의 실체적인 개념만을 정의하는 시도라고 밝힌 웨이츠의 예술개념에 대한 '정의 불가론'의 의미를 규명하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을 원용하며 예술을 '게임'과 같은 개념의 종류라는 점을 밝힌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분명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예술작품을 고려한다면,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예술 작품의 존재를 분석함으로서 정의가 가능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토의 예술철학은 출발하며 의미를 지닌다고 논자는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를 촉발시킨 것으로 우리는 1964년 앤디 워홀이 전시한 '브릴로 상자'가 단토에게 가한 충격은 그의 예술철학의 도화선이 된다. 그는 이 주제를 가지고 20여년이상 탐구에 몰두하게 된다.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근거를 밝혀 그 차이를 통해서 분별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철학의 대상이 예술이라 불리는 대상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주어진다면 문제가 명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를 위하여 그는 예술의 구체적인 대상인 예술작품의 특질이 갖는 성격을 규명함으로서 가능하리라고 추론하고, 예술작품의 존재론적인 성격을 도출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점을 III장에서 다루었다. 그의 예술작품의 특질에 대한 분석은 의도와는 다르게 이미 예술작품이라고 규정된 것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범주의 오류를 범하게 되지만, 그러한 시도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사용했다고 논자는 판단한다. 결국 그는 예술작품이 갖는 일반적인 성격으로 어떤 것에 관함(aboutness)이고 그것의 의미의 구현체라는 잠정적인 규정을 도출하게 된다. 또한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보여준 출발점인 식별불가능한 한쌍의 대상에서, 하나는 예술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 사물이 되는 식별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이유, 즉 근거를 통한 구별을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 다시 말해서 예술론의 분위기와 예술사의 지식이라는 '예술계'라는 개념을 요청하게 된다. 일상의 단순한 물리적인 대상에게도 예술의 지위는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아무것이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문맥과 예술사의 지식이 의미를 부여하여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은 '해석'을 통한 의미의 구현체가 된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물리적인 실체성을 갖지만,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예술작품으로 성립하게 된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
IV장에서는 그의 테제인 예술의 종말을 다루게 된다. 예술의 종말이나 '예술의 죽음'의 테제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제기되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예술개념의 붕괴나 위기의 시점에서 제기된다는 점을 공유하게 된다. 단토와 같은 연결선상에 있는 헤겔의 '예술의 과거성'을 살펴보고, 예술철학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한스벨팅의 '미술사의 종말'을 비교하여, 그들의 주장을 추동하는 것이 예술개념이라는 사실을 할 것이다. 그들에게 종말은 예술 혹은 미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시대'를 지배하고 이를 서술하던 주제인 내러티브가 종말을 고하고, 더 이상 과거의 이상이 유효하지 않은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를 주장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그들은 '역사 이후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그 특성을 다원주의라고 규정한다. 이 특성은 예술가들이 따라야 할 특정한 방향이나 지배적인 양식이 부재하는 현재의 상황을 말한다. 논자는 단토의 예술철학이나 미술사의 종말을 통해서 드러난 새로운 예술개념의 주체인 '예술가'와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과거에는 예술작품으로 취급되지 않았을 것 같은 예술작품과 예술작품 같은 일상의 사물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예술개념이 모호하고 혼란스럽지만, V장에서는 단토와 벨팅이 주장하는 바를 다원주의 시대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서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단토의 예술철학의 출발점인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갖는 의미와 이미 예술로서 규정된 워홀의 작품을 '차용'하는 예술행위를 분석하였다. 특히 '차용(appropriation)'을 통한 역사이후시대의 주된 경향과 모더니즘 시대의 주장을 '추상'을 통해서 의미변화를 살펴 다원주의 시대의 미술이 갖는 의미를 추적하고, 그 특질의 일단을 통해서 컨템퍼퍼리 미술의 현황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특히 벨팅의 미술사의 종말과 새로운 미술사의 가능성으로서 '기억'을 통한 미술사가 미술가들의 창작행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결론에 갈음하여 단토의 문제의식은 투명하지만, 예술개념이 갖는 포괄성이나 흡수성으로 인하여 마땅히 예술철학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성이나 일반성을 지향하게 되어, 명증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추론한 개념들이 부재하게 되는 상황들이 드러내는 단토의 문제점들을 적시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논자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특히 다원주의 시대의 예술적 실천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의 제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적시하였다. 또한 다원주의 시대의 미술적 행위의 해석이나 판단을 위해서는 이론적 의미와 해석을 위한 미술내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만큼, 예술이 단순히 시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단토의 논지처럼 철학적 사유의 대상인만큼 그만큼 지적유희로서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