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문학의 회복은 전통적인 대학이 아닌 대중성인교육의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학 안에서 점차 줄어드는 교양교육과 인문학 전공학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대학 밖에서는 철학교실, 인문학 아카데미 등 여러 수준과 차원에서의 인문학 강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컨대 인문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와 기회는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는 평생교육의 맥락에서 포착되고 있다. 본 연구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대중성인인문교육의 맥락에서 인문학과 인문교육의 접합방식의 변화에 주목하는 한편, 성인학습자들이 인문학습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해가는 실제적 양상을 분석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문교육의 부활'은 그 '교육'적 성격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루고 있는 '인문학'의 성격 자체에 모종의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중인문 교육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스스로를 기존의 전통적 인문학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실천인문학, 대중인문학, 생활인문학, 시민인문학 등으로 부른다. 흥미 있는 점은, 이들 실천인문학자들은 기존의 인문학계의 생존방식 혹은 자기복제방식과 구별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기정체성을 구축해가고 있으며, 대중인문교육이라는 활동무대를 통하여 그 담론과 정당성, 그리고 영향력의 범주를 지속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인문학의 위기는 직접적으로 학문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의미구조를 재생산하지 못했다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 이유는 형식교육이 지녔던 '형식성'의 자기모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학교와 대학이 가지는 형식성은 견고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닫힌 권위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학문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대중성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불연속성을 결과했다.
실천인문학이 자기정립해 나가려는 맥락을 바꾸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중과의 교육소통을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인문학의 본질적 차원에서 보면 인문학적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 삶 속의 대중이고, 바로 그 살아 숨쉬는 맥락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간 것이 실천인문학이다. 인문학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며, 그것은 결코 실험실 안에서 작동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고통 받고 실존적인 고민을 안고 있는 대중 안으로 들어갈 때에만 다시 뿌리내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노숙인을 비롯한 현장인문학은 인문학의 시혜가 아니라 인문학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좋은 밭을 찾아간 것이고, 그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대상은 인문학과 인문학자들 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문학의 의미는 인문교육을 통해 학문의 생명성이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과학이 아니며, 오직 인간의 삶 속에서만 존재한다. 인문교육은 인문학적 고민을 통해 정련된 삶의 양식을 공유하는 소통의 과정이며, 인문학이 스스로 다음세대의 학문적 발전을 성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문학의 언어들은 일상의 문제를 다시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검증되고 재개념화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을 매개하는 활동이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과 삶을 서로 엮어 직조해내는 과정이 다름 아닌 교육의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와 같은 활동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실천인문학과 대중인문교육 간의 관계이며, 이들이 다양한 대중의 층위와 접속하기 위해 프로그램, 교육실천, 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산출하는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 논문의 핵심적인 질문은 바로 '성인학습자들은 왜 인문학을 공부할까'라는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성인학습자들에게는 본격적인 학습활동에 앞서 인문학습을 촉발시키는 문화·실존·학습의 선(先)경험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우선, 첫 번째 "문화"적 층위가 현대사회의 문화담론을 획득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계기라면, 두 번째 "실존"의 층위는 삶의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심층의 내면에서 실존의 문제를 촉발시키고 인문학적 질문을 밀어내는 존재적 탐구의 계기가 된다. 예컨대, 삶의 위기상황에서 직면하는 심리적 고통 및 존재부정의 경험, 인간관계 간의 균열, 사회적 갈등의 문제 등은 실존적인 질문을 삶의 전면으로 전경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문화적 층위와 실존적 층위에서의 욕구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분리되어 있다. 여기에서 세 번째 "학습"의 층위는 인문학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매개적 지평이 된다. 학습기억은 과거의 인문학습과 관련된 선행경험으로서 두 가지의 경험이 공존한다. 하나는 집단적 학습과정에서 소외와 소유양식에 젖었던 극단적 경험이 남아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실존적 문제와 결합하면서 물화적 지식의 의미를 넘어섰던 경험이다.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 맞닿으면서 이전의 학습경험들은 현재적 맥락에서 복원되고, 이를 현실의 맥락에서 재가치화하는 작업으로부터 학습활동도 본격화된다.
그러나 인문학습의 경험은 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교육적 과정과 체계화된 학습경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습자들은 한편으로는 인문학교실에 참여하면서 전문강의의 지원을 받아 학습활동을 확장해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세미나와 자기학습을 병행해가게 된다. 학습과정이 진행되면서 학습자들의 인문학습경험은 공통적으로 세 단계를 거치면서 그 차원을 확장해나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번째 단계는 학습초기 단계로서 주로 이론적인 강의에서 전달되는 해석적인 관점을 그대로 읽어나가면서 내면화해가는 '형식적·보존적' 학습의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맥락에서 메시지를 추출하기 위한 내적발화가 시작되는 단계로서 해석의 주관성을 높여나가는 '구성적·확장적' 학습의 과정이다.
세 번째 단계는 의미화의 맥락이 바깥의 세계와도 연결되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타당한 근거와 해석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조직해가는 '비평적·메타적' 학습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학습이 심화되면서 학습자들이 일상으로 파급된 변화를 체감하는 지점은 어느 한쪽의 방향으로도 수렴될 수 없는 비균형성의 축이다. 학습을 통해 얻은 새로운 깨달음은 동시에 미진함을 남기는 질문을 생산하며, 이 지점은 계속적으로 학습활동과 연동되는 계기로 이끈다. 학습을 통한 지식의 획득으로 삶의 한 차원을 설명할 수 있는 리터러시가 확장되지만, 동시에 그를 통해 더 복잡해지거나 해결될 수 없는 반대편의 질문이 생산된다. 이 질문은 끊임없이 발전된 해결점을 모색하기 위해 심화된 학습관계로 나아가게 한다.
결과적으로 인문학 지식과 실존적 질문을 넘나들고 연계해내는 과정에서 이전의 문화·학습·실존 간의 분절화 되어있던 선(先)경험은 선순환적 소통을 확장하는 재구성이 이루어진다.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즉시적인 요구를 기대하며 시작된 인문학습도 실제 학습과정에 들어가면서는 인문학적 주제와 질문이 향하는 심층의 내면과 만나게 된다. 실존의 문제로부터 출발한 인문학습도 결과적으로는 현실의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지식으로까지 확장되면서 다시 그로부터 발전된 질문이 삶의 심층으로 내려오는 순환이 이루어진다. 물화적 지식은 자신의 삶과 관련을 맺는 실존의 경험을 통과하면서 살아있는 지식의 의미를 획득하며, 개인의 국지적인 실존경험 역시 학습을 통해 일반의 의미를 획득하면서 소통적 지식으로서의 교양학습과 연계된다. 문화·학습·실존 간의 상호역동은 이후의 학습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선순환구조를 이루어나가게 된다.
본 논문에서 성인학습자들이 인문학습을 통하여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해가는 전체 사이클 즉 학습 과정, 학습 주체, 질문의 차원, 학습 체험, 학습의 의미, 학습의 적용과정에 나타난 평생학습적 특징은 다음의 6가지 측면에서 고찰되었다.
첫째, 인문학습체험은 실존적 고통의 심리적 응결점들이 혼입되고 소통하는 과정으로서 '치유'의 과정을 동반한다.
둘째, 학습의 주체로서 자아의 의식은 '자기관계(경험자아-성찰자아)'를 매개항으로 해서 성찰적인 자기이해 및 타자에 대한 의식을 확장해나가며, 시간성의 지평도 미래로 확장된다.
셋째, 학습자들이 질문을 제기하는 차원은 실존의 근원적인 의미와 접속하는 'why(왜?)'이며, why의 방향이 '자신'을 향하는 곳에서 학습이 시작되고 학습이 진행되면서 why의 범역도 자신을 중심으로 확장된다.
넷째, 인문학습과정은 맥락화된 거리와 관점을 통찰하는 '사유방법에 대한 학습'이다.
다섯째, 학습을 통해 획득된 상대적인 의미는 삶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삶의 지향 관계와 목적을 재설정하는 계기로 이끈다.
여섯째, 학습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인문학습을 통한 '앎(knowing)'은 다양한 의사소통 '사이'에 존재하는 다원성, 복수성, 복합성을 읽어내면서 의사소통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인문학습은 답이 아닌 삶의 질문을 심화시키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시 학습이 요청되는 순환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인문학 지식은 그 지식이 내 삶으로 적용되기 위해 다시 자신의 고유한 맥락에서 되물어지는 질문으로 변형된다. 왜냐하면 실존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보일 경우라도 절대 동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상황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습을 통해서 학습자들은 보편자로 향하는 경험이 아니라, 인간 삶에서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질문과정을 통해서 자신만의 특수한 질문을 구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은 본인만이 풀 수 있는 자신의 숙명적인 질문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의 답을 찾아나가는 단계로 경험을 성장시키는 탐구의 과정을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