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토착화 정신을 토대로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 디자인 가능성을 탐색한 후, 그 활용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계화가 확산 된 오늘날 자민족의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세계 각국은 문화 산업 또는 문화 콘텐츠 산업의 형태로 토착화 작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토착화 정신이 이 땅에 어떻게 구현 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연구와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르치는 토착화란 가톨릭 중심의 사상 안에서 외래 사상인 그리스도교를 한국의 문화적 상황에 파종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곧 한국 문화의 텃밭을 토대로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그 진리를 온전히 한국민족의 삶 안에 정립하여 뿌리 내리고 마치 이전부터 한국 전통 문화 안에 생성된 종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가톨릭 십자가이다. 가톨릭 십자가는 토착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이후 십자가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구체적인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표징 등으로 토착화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십자가는 가톨릭교회의 토착화 주제로써 그리스도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톨릭 성물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십자가는 서양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여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 가톨릭 십자가의 유형특성 및 문제점 분석을 위해 현재 국내·외 성물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십자가 가운데 각각 100개의 샘플을 선정하였다. 유형특성 분석을 통해 나타난 한국 가톨릭 십자가의 유형특성 분석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가톨릭 십자가의 종류에 있어 국외 가톨릭 십자가는 서로 다른 양식이 결합되어 다양한 모양의 십자가가 디자인 되고 있는 반면, 국내의 경우 대부분 라틴식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십자가는 각 종류의 십자가가 지니고 있는 기본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다양한 종류의 십자가 디자인이 요구된다.
둘째, 국내 가톨릭 십자가의 형태유형의 경우 클래식하면서 장식적인 형태로써 전통적인 십자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국내의 토착화된 십자가는 클래식하면서 단순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몇몇 가톨릭미술가들에 의해서만 제작되고 있으므로 디자인이 획일적이며, 작품적 성격이 짙어 신자들의 신앙심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셋째, 국외 가톨릭 십자가는 서로 다른 상징들과 결합되어 다양한 유형의 십자가가 디자인 되고 있는 반면, 국내 가톨릭 십자가의 상징은 지나치게 인물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상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토착화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본 논문에서는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토착화된 에티오피아의 랄리벨라 십자가와 프라하의 성 네포묵 십자가 등을 사례로 들었다. 사례를 통해 나타난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전통문화 및 생활양식을 상징화함으로써 십자가의 토착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토착화된다는 것의 이면에는 세계화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둘째,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 순교자들의 신앙고백, 박해에 사용되었던 형구들 등 한국 가톨릭성지와 인물에 대한 연구는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 디자인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상징요소가 될 수 있다.
셋째, 십자가는 전통적인 문화의 의미와 현대성을 두루 지녔다.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십자가는 구원의 메시지와 함께 시대정신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의 상황을 십자가에 표현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얻은 결론은 정신문화로 말할 수 있는 무형적 요소와 물질문화를 대변하는 유형적 요소가 합성되어야 토착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 디자인을 위해 다음과 같이 토착화 디자인 요소를 발굴하고 그 활용방향을 탐구하였다.
첫째, 한국의 민족문화 상징인 효와 조선후기 가톨릭교회의 효신앙(孝信仰)통해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 디자인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왜냐하면 한국 가톨릭 신자들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효사상이야말로 신앙의 선조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심성이자, 십자가 상징의 가장 중요한 의미인 하느님 사랑과 예수의 희생정신과 그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둘째, 효는 십자가와 우리 민족 사이에 '교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무형적, 유형적 요소는 성지(聖地)이다. 성지에 대한 연구는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를 위한 디자인 방향설정에 중요한 정보를 제시한다. 유교의 효를 재해석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은 한국 가톨릭 토착화 역사의 실증자료가 되었으며, 당시의 풍습, 형벌, 순교이야기 등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토착화 요소가 된다.
셋째, 토착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는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에 대한 의지로 종교간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에 수용된 부적신앙과 구복신앙의 활용을 통해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 디자인 활용이 가능하다.
본 논문은 가톨릭 십자가에 반영된 효를 무형적. 유형적 특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토착화 가능성에 대한 활용가능성 탐구로써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서구적 전통의 재현이 아닌 한국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경험을 중심으로 재창조하려는 노력이며, 종전의 십자 문양 구조를 '효'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하여 한국 가톨릭교회만의 새로운 관점으로 토착화 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효를 중심으로 가톨릭 십자가의 토착화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이는 서구 가톨릭교회와의 차별성을 지닌 한국 가톨릭 토착화 디자인 개발의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