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칭되는 우익지욱(藕益智旭: 1599-1655)에 의해 저술된 『주역선해周易禪解』는 『주역周易』의 전체내용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유일한 역학서(易學書)이다. 명말에는 불교에 있어 유불의 융화와 합일의 관점에서 유교와 노장(老莊)의 사상을 불교적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이러한 결과로 저술된 책들이 바로 지욱과 더불어 4대 고승으로 평가되는 운서주굉(1532-1612)의 『죽창수필竹창隨筆』과 감산덕청(감山德淸: 1546-1623)의 『노자도덕경주老子道德經注』, 그리고 지욱의 『주역선해周易禪解』와 『사서우익해四書藕益解』등이다. 이렇듯 유불의 융화와 합일이라는 취지의 관점에서 저술된 『주역선해』에는 실로 다양한 불교사상과 유교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본 논문은 『주역선해』에 내재해 있는 바로 이러한 불교사상, 유교사상, 역학사상 등을 연구 분석하여, 이 같은 사상들이 『주역선해』을 매개로 하여 어떻게 하나로 융합, 회통되고 있는가를 밝혀내는데 목적을 두고 연구하였다.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하여 『주역선해』에는 실로 다양한 사상이 종합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불교사상에 있어서는 화엄과 천태사상이 중심사상으로 援用되고 있지만, 그 밖에 대 · 소승 사상을 비롯하여 유식 · 계율 · 선종사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교사상이 두루 괘효(卦爻)의 뜻과 역리(易理)를 해석하는데 원용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두 번째, 유교사상에 있어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등과 같은 유교의 기본사상과 신유학(新儒學)인 정주(程朱)의 리학(理學)과 육왕(陸王)의 심학(心學) 등이 부분적으로 함께 어우러져 표현되고 있다. 세 번째, 역학사상(易學思想)에 있어서는 「역전易傳」의 의리학적(義理學的) 관점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송원명대의 심학계통의 다양한 역학가(易學家)의 역설(易說)이 수용되고 있다. 지욱은 이 같은 유불의 다양한 사상들을 두루 원용하거나 수용하여 괘효의 뜻과 역리를 해명하는 가운데 면밀하게 융합하고 회통시켜 하나의 상통한 이치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주역』을 해석하는데 있어 유불의 다양한 사상이 하나로 융합 · 회통되어 표현되고 있는 『주역선해』는 역학사(易學史)에 있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사상적 성취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역리(易理)와 불교의 회통(會通)이다.
『주역선해』가 성취해 낸 이 같은 역리와 불교의 회통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역리와 불법이 동등한 하나의 우주의 근원적 진리임을 호증(互證)하였는 사실이고, 다음은 역(易)과 진여불성(眞如佛性)이 결과적으로 하나의 상통한 진리임을 천명해 내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불교와 유교의 내적, 외적 융합이다.
『주역선해』가 성취해 내고 있는 사상적 융합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불교의 각 종파상사의 융합이고, 다음은 다양한 유학사상의 융합이며, 마지막 하나는 유교사상과 불교사상을 원만하게 융합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 종교와 철학의 사상적 융합이다.
『주역선해』가 성취해 내고 있는 종교와 철학 방면의 사상적 융합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정리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역학과 불교에 있어 무극(無極), 태극(太極), 역리(易理), 역(易), 건도(乾道), 음양(陰陽), 동정(動靜), 도(道), 기(氣), 변통(變通), 이사(理事), 체용(體用), 심(心), 법(法), 진여(眞如), 불성(佛性), 연기(緣起), 무명(無明), 성수(性修), 정혜(定慧), 지관(止觀), 적조(寂照) 등과 같은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된 철학적 개념으로 융섭(融攝)하여 하나의 동일한 개념으로 통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고, 다음은 역학에 있어 음양(陰陽), 동정(動靜), 강유(剛柔), 길흉(吉凶) 등과 같은 상대적 역(易)의 개념을 설명함에 있어서 불교의 정혜균등(定慧均等), 실권병중(實權병重), 성수불이(性修不二), 지관쌍수(止觀雙修)의 교설을 대비시켜 그 뜻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유불의 융합과 조화라는 목적의식에서 저술된 『주역선해』가 비록 그 내용면에 있어 완전하고 철저하지 못한 논리적 비약과 모순이 있을 수 있지만, 역학사에 있어 이러한 세 가지 측면에서의 사상적 성취와 영향은 결코 도외시 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이 분명하다. 이는 곧 유불의 조화론이라는 측면에서 뿐 만 아니라, 역학사에 있어서도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는 지욱만의 가치 있는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