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淺見錄』은 우리나라 最初이자 最古의 주역에 관한 주석서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찰하여 보면 『周易』은 삼국시대로부터 이미 국가에서 교육하고 있었다. 이를 보면 학문적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 백년이 흘러 내려오면서 교육은 이어져 왔는데도 『周易』에 관계된 어떤 책자도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와서 비로소 權近의 『周易淺見錄』이 저작되면서 역학발전의 기틀이 잡혔다고 하겠다. 이는 조선의 역학사와 유학사에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周易淺見錄』은 『周易』 주석본으로 經과 傳을 모두 주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周易』의 전체를 조목조목 주석한 것이 아니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의문점이 있거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그 부분에 대해 해석을 한 것이다. 주석과정에서 程子의 『易傳』과 朱子의 『本義』, 그리고 吳澄의 『易纂言』을 주로 인용하였고, 그 외에 王申子, 項安世, 熊禾 등 다양한 학자들의 학설을 인용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權近이 이들 학설 중에서 수용한 부분과 비판한 내용을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이를 토대로 조선시대 역학에서『周易淺見錄』이 차지하는 위상을 점검해보았다. 아울러 그 이후 간행된 『周易』서적이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본 논문에서 연구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權近의 『周易淺見錄』은 中國 宋·元代 易學으로 경도될 수 있는 周易解釋의 事大性을 배격하고 균형감각을 유지했다는데 학문적 탁월성이 있다. 程子나 朱子 및 吳澄 등의 의견에 잘못된 점을 엄정하면서도 기탄없이 지적한 점이 그것이다.
둘째, 조선시대 주역해석의 방향을 제시했다는데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의리역을 중시하되 상수역도 포섭하는 그의 역학은 소위 易學의 綜合化, 融合化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겠다.
셋째, 『周易淺見錄』은 조선시대 『周易』 주석서의 하나의 典範으로 표상의 역할을 했다. 그러한 점은 그 이후 간행된 여러 『周易』 주석서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넷째, 『周易淺見錄』이 최초의 註釋書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준이 높고 학문적 깊이와 역량이 크고 깊다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