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예술 시장을 주도했던 요인들은 실제로 다양하다. 전세계를 막론하고 문화예술 시장의 형성에는 근대에 들어 국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지원이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을 확인했다. '수익의 극대화'가 기업 경영의 중요한 목표라고 한다면, '예술가와 문화예술시장 그리고 이를 향유하는 고객가치의 충족' 이라는 보다 복잡하면서도 구조적 인 고려가 문화예술 경영의 주요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20여년간 미국의 공연예술은 전례 없이 큰 성장을 이룬 바 있다. 이 기간동안 관객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교향악단, 극단, 무용단, 오페라단의 설립이 확대했으며, 예술에 대한 지원기관으로부터의 지원금도 몇 배로 늘어났다. 많은 예술단체들이 이러한 지원 속에서 작품 제작에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공연장을 확대하며, 직원들을 충원했다. 중간 규모의 교향악단들도 상당한 규모의 운영체제를 갖추면서 처음으로 단원들을 1년 단위로 채용했다. 이러한 미국 문화 예술시장의 변화 속에는 관객과 외부 지원금이 모두 지속적으로 확대되리라는 낙관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Kotler and Longhurst 2009).
한편 프랑스 예술시장의 경우, 이미 17세기에 들어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 시기부터 정치와 문화예술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16세기의 프랑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미식문화의 발전은 풍성한 식탁이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미식이 발달한 데에는 루이 14세의 미식가적인 취향이 당시 탐식을 악덕으로 여기던 교회의 규율이 크게 완화된 것에 기여했다(고봉만 2001).
프랑스는 논문에서 확인되듯이 미국의 문화예술 기관인 NEA보다 무려 30여년 앞선 1934년에 AFAA라는 프랑스 예술연구 부서를 정부 지원하의 공공기구로 개편하여 탄생했다. 본 연구에서는 21세기 문화예술 시장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과 프랑스 문화예술지원기관의 형성과정과 이를 통한 문화예술정책의 변화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문화정책의 흐름을 연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를 통한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적가치의 탐구와 완성' 이라는 예술에 있어서 국가 차원에서의 정치적 관련성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를 통해 문화예술 시장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미국의 문화정책은 세계 대전의 발발과 냉전시대를 거친 양 국가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둘째, 프랑스의 경우 문화나 예술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나라인 동시에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가 공존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프랑스는 경제력이나 국민소득 순위에서는 한 번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삶의 질' 이나 '은퇴 후 살고 싶은 나라' 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항상 1위 또는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말해주듯이 삶의 질이란 경제적 풍요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위상의 확립은 1959년 이후 문화부 장관으로 활약하는 앙드레 말로와 1981년 선출된 미테랑 정부의 전폭적인 정치적 지지와 후원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셋째, 경제 그리고 국사적인 위치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국의 경우, 프랑스보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문화예술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중세 이후부터 건축, 미술, 음악, 미식 문화에 대한 다양한 문화예술적 기반을 형성했던 프랑스에 비해 비교 우위를 말할 수 있는 문화예술 장르가 전무했던 미국은 1930년대 들어 루즈벨트가 추진했던 뉴딜 정책의 지원 하에 '추상표현주의' 라는 미술 장르를 후원했던 역사가 있다. 이는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냉전시대로 넘어가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상수립에 있어서 문화예술을 통한 정치적 이미지 변신에 주 목적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결국 미국 문화예술지원기관은 정부 불간섭의 원칙 하에 운영되고 있으나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운영 상의 한계를 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