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벨선교사가 광주에서 190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때에 첫 예배를 드린지도 벌써 100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 100년동안 광주,전남교회는 왕성하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더욱 힘있게 매진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100년간 광주,전남교회가 이렇게 왕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뿌리를 분명하게 발견할때에 새로운 100년에도 더욱 뿌리깊은 교회로, 더욱 왕성한 교회로 자라날 수 있다. 즉 새로운 100년을 향한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다.
광주,전남교회의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뿌리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유진벨선교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는 유진벨선교사가 바로 나주와 목포와 광주지역 교회개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광주지역에 최초의 교회인 광주제일교회를 설립하였며, 이 교회를 통해서 광주중앙교회가 개척되어졌다. 광주모교회가 그에 의해서 개척되어지고 광주,전남교회들이 우뚝 세워져 갔다. 이를 생가할때에 이런 그의 신학과 목회와 선교적 배경이 곧 광주,전남 교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100년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서 유진벨선교사의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배경은 좋은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본 논문을 통해서 그의 신학적 배경은 칼빈주의 신학배경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그의 출신 신학교인 유니온신학교와 그의 파송교단인 남장로교의 신학을 살펴보았다. 유니온신학교는 구체적으로 로버트 답네의 신학사상을 살펴보고, 남장로교는 대표적인 신학자인 돈웰의 신학사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서 답네와 돈웰이 칼빈주의자임을 볼 수 있고, 유진벨선교사는 이런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미션 리포트에 보면 그는 철저한 말씀중심의 사역을 감당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는 학교와 병원을 설립했을지라도 책임자를 따로 세우고 철저한 말씀중심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이를 통해서 볼때에 광주,전남 교회가 지난 100년동안 이렇게 왕성하게 자랐던 것은 칼빈주의의 건강한 신학과 말씀중심에 깊은 뿌리를 두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그의 목회적 배경은 그의 생애와 그의 후손들의 사역에서 나타난데로 철저한 희생과 자녀에까지 이어지는 희생적 목회였음을 볼 수 있다. 그는 광주에서 아내를 두 번이나 먼저 보내었음에도 자녀에까지 분명한 선교관을 심어서 대를 이은 선교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그의 증손자들이 북한선교에 헌신을 하고 있다. 자녀에까지 이어지는 그의 희생적 목회는 지난 100년의 광주,전남 교회의 밑거름이 된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교적배경은 이렇게 말씀중심의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며 병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 착한 행실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리고 이런 선교적 사역을 그의 후손들이 이어받아 유진벨 재단을 만들어 북한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북한에 말씀이 들어가기전에 먼저 의료선교를 통해서 마음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배경으로 인해서 광주, 전남교회가 지난 100년동안 왕성하게 성장하였다. 이를 통해 새로운 100년의 이정표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유진벨선교사와 같이 칼빈주의적 건강한 신학과 말씀중심에 더욱 뿌리를 내려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문화센타와 사회선교활동을 겸하면서 감당하는 점은 좋지만 건강한 신학과 말씀중심의 뿌리를 결코 소홀이 해서는 안된다. 아니 더욱 건강한 신학과 말씀중심으로 견고한 기초를 만들어야한다. 뿌리깊은 나무가 되지 않으면 얼마 자라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더욱 희생적이 되어야하고, 이 희생적인 신앙을 다음세대에 계승하는데 중점을 두어야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다음세대를 키우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세대의 영향을 받아서 다음세대를 복음적으로, 희생적으로 세우지를 못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도 텅빈 유럽교회처럼 되어 버릴것이다. 셋째, 이웃과 사회에 베풀고 섬김으로 이 사회에 더욱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100살이 된 광주,전남 교회가 이런 분명한 이정표를 잘 따라간다면 200살이 되었을때는 통일한국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