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우리의 건강과 생명, 환경의 질과 사회관계, 경제, 기술 및 정치에 이르는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죽음의 문화'로 대변되는 심각한 위기상황이 전세계적으로 드러나자 사람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는데, 생명의 의미를 되찾고 '생명의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대 이후의 생명 이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 이해의 틀을 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산업·과학문명의 물질주의적·환원주의적·자유주의적 사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더 넓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기계론적·환원주의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유기체적·전일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사상과 이론을 바탕으로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소개하고, 생명윤리에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카프라는 '문명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역동적 변화의 패턴 속에서 현대의 위기상황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도약할 기회라고 제시하며 기계론적·환원주의적 세계관에서 전일론적·생태적 세계관으로의 인식 및 가치관 변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체계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카프라가 제시하는 시스템적 견해란 세계를 부분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상호 연관적이며 전체적인 그리고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시스템적 관점에 의하면 생명은 '자기생성 네트워크' 즉 비평형 상태에서 끊임없이 자기조직을 통해 유지되는 살아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조직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생명은 협동과 상호의존의 관계성을 통해 생명 활동을 유지한다고 이해되며, 관계의 복잡화와 다양화는 진화의 패턴으로 설명된다. 복잡성과 다양성의 증진이라는 통일된 패턴은 생명의 본질이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로 확장되며, 이러한 이해는 진화과정을 생물이 일방적으로 환경에 적응한다는 전제 속에서 끊임없이 환경에 시험당하고, 자연에 의한 도태되거나 패배하여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경쟁하고, 더 나아가 환경과 싸워 굴복시켜야 한다는 세계관을 뛰어넘어 모든 생명이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상호관계 속에서 생명의 가치에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다.
다양성과 관계성 그리고 협동하고 상호 의존하는 관계의 복잡성으로 나타나는 생명의 패턴은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윤리적 물음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시스템적 견해에서 제시하는 생명의 패턴인 관계성과 다양성은 생명의 원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생물학적 다양성뿐 아니라 문화와 가치를 포함한 모든 다양성은 존재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생명이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며 협력하는 존재로 이해될 때, 생명은 폄하당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의 지위를 획득한다.
또한 시스템적 견해에서는 인간이 생명의 그물이라는 관계망 안에 속해있다는 사실로부터 생명의 패턴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함을 주장한다. 따라서 생명의 가치를 쾌락 또는 물질적 가치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경계하고, 상호의존과 협동의 관계와 공존을 강조하는 시스템적 견해에서는 공리주의적, 상대주의적 윤리이론과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사조를 비판한다.
생명에 대한 시스템적 견해를 통하여 본다면, 인간 생명에 대한 이해는 단적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기능적·특징적 요소보다는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통하여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사료된다. 따라서 생명의 시작뿐만 아니라 생명의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은 환원되어 분석되기보다는 총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준에서 생명의 가능성 자체를 생명으로 인식하고 보호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