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핵협상은 '불균형 협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총량적인 국력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실제적인 국력의 지표가 되는 군사력과 경제력 변에서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은 협상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동원할 자원의 한계를 가진 북한이 실제 협상과정에서는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더 큰 협상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북한의 협상력 결정요인을 국력과 비례하지 않는 협상력 구성요소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협상전개 과정 전망과 함께 그에 대한 우리의 정책적 대응방향을 제시하였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유리한 협상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운용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운용적 요인으로는 먼저 협상과정에서 보였던 강한 집중력을 들 수 있다. 핵문제에 정권의 사활이 걸린 북한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협상에 집중한 반면 미국은 중동문제, 테러리즘 등 여러 현안에 대처해야 하는 입장에 있어 북한이 미국에 대해 상대적인 집중력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만 집중함으로써 집중력을 배가할 수 있었다. 6자회담에서도 북·미 직접 교섭을 집요하게 추구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어 나갔다.
두 번째 운용적 요인으로는 북한이 상황의 흐름에 대처하여 사용하였던 다양한 전술을 들 수 있다. 특히 북한은 벼랑끝 전술로 대표되는 위협을 통한 협상전술을 이용하여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미국의 관심과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북한은 '벼랑끝 전술 → 맞대응 전술 → 유화 전술 → 양자협상을 통한 타결 → 합의 파기 후 벼랑끝 전술' 이라는 패턴을 반복하면서 실질적인 북핵 폐기는 교묘히 피해가며 '보상'만을 챙겨 왔다.
이러한 운용적 요인의 분석을 통해 북한의 협상력 향상 요인은 하비브의 연구에서 제기된 '이슈 구체적인 구조적 힘'의 하나인 집중력과 '행태적 힘'의 하나인 협상전술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북·미 핵협상에 있어서 북한의 협상력을 더욱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국가와 지역의 정세변화라고 하는 환경적 요인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핵문제와 관련한 대내외 협상환경은 북한의 협상력 증대에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먼저 대내적으로 북한은 내부 여론 및 외부 제재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고 협상에 임해왔다. 또한 주민의 생존보다 정권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체제의 특성 또한 협상에 유리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북핵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정치적 상황은 협상결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 도출 당시는 그해 11월의 중간선거와 1995년 4월의 NTP 만료시점을 앞두고 클린턴 정권이 서둘러 북한과의 협상을 마무리 짓고 일정 성과를 과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2008년 10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이라크전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임기 종료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도출하고 싶어하던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환경 또한 북한이 핵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북한의 핵위협에 미국은 군사적 수단을 적절히 사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해관계, 그리고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인질국'으로 삼을 수 있었던 지정학적 위치는 북한의 협상력 증진의 원인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반도의 정치적 안정이 훼손되는 것을 자국 국가이익 달성에 큰 저해요인으로 생각하는 중국은 대북 강경제재 등이 거론될 때마다 미국의 발목을 잡고 대북 경제지원 등을 통해 미국의 협상력을 저해하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위에서 제시한 집중력, 협상 전술, 협상 환경이라는 요인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함으로써 대미 핵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끌어 내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협상환경은 그 자체 협상력 뿐만 아니라 그 외 변수의 발휘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6자회담을 통해 어느정도 실마리가 풀리는 듯하던 북핵문제는 2008년 말 핵 불능화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증'(verification)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이전 시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호전성과 기만적인 행동들이 되풀이 되었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도 '핵포기 불가' 의사를 지속적으로 천명해 왔으며 2차 핵실험을 통해 이를 행동으로 증명하였다. 또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양자 대화에 관한 의견이 조율중이던 2009년 9월 29일에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제재를 앞세우고 대화를 하겠다면 우리 역시 핵 억제력 강화를 앞세우고 대화에 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오바마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를 병행하면서 대화에 나설 경우 핵 프로그램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 내부에서는 지난 클린턴·부시 행정부에서 진행해 온 북·미 대화와 북핵 협상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확산되고 있으며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을 반복해선 안된다는 입장이 팽배해 있어 향후 협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우리 정부의 과제와 대응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먼저 향후 전개될 협상과정에서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적극적인 개입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철저한 사전 준비 아래 '원칙에 따른 협상'(principled negotiation)을 추진하여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고 주변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 핵무기의 궁극적 페기라는 목표와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핵협상에 있어 불가역(irreversible)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핵폐기를 위한 실질적 조치 없이 보상이 선행되던 과거의 전례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 양보 위주의 유화적 정책의 한계는 이미 입증되었다. 강압과 보상의 시그널을 북한에 명확히 전달하고 이를 위해 '당근과 채찍'의 효과적인 병행 전략이 요구된다. 또한 협상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이 적극 반영되기 위해서는 북핵 협상이 북·미 양자 회담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굳건한 한·미 동맹 강화는 물론, 중·러 등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군사안보적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핵우산 등의 핵 억제력 확보에 힘써야 한다. 또한 독자적 대북 억제능력 및 방어능력 확보에도 힘쓰면서 국민들에게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시키고 국민적 지원 의지를 얻는데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북한 체제와의 연계한 대응책 개발이 필요하다. 우선은 핵문제가 발단이 되어 초래될 수 있는 북한체제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한 우리의 역량 재점검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북한 체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김정일 정권의 개혁·개방에 대한 인식 전환을 통해 폐쇄적이고 전 근대적인 체제를 변화시켜야 북핵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위협들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