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에 있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지자들에게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향을 제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소속된 집단과 계층의 연대감을 강화시켜 성원들에게 사명감과 행동의 에너지를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심리적 측면에서도 지배자로의 귀속에 기인하는 안도감을 부여하여 집단의 효율성을 증진케 한다. 즉,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정치적 태도나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 국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대내외 정책결정 및 집행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이를 통해 국가를 통치·운용하게 되며 이에 따라 국가의 전반적인 정치 행위에서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 정권 또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특성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독자적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고안해내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혁명신화를 창조해왔으며 이와 동시에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역사 날조를 서슴지 않고 내적으로 체제안정 및 유지를 위해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을 북한주민의 신념체계로 만들어 그들의 단합과 동원의 보장을 도모해왔다.
김일성 시대 북한사회의 전반적인 신념체계로 작용했던 '주체사상'은 김정일 시대로 들어오면서 '선군사상'에 그 역할을 이양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의 '선군사상'이나 '선군정치'는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발생했던 냉전의 종식과 북한의 사회주의 우방국들의 몰락으로 인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그리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가중된 북한 내부의 체제 유지에 대한 위기의식 등 국가의 대내외적인 위기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선군사상'은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정치방식으로 오늘날 북한의 대내외적 통치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선군정치'와 '선군사상'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김정일 체제를 강화시켜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대내적으로는 최고사령관인 김정일을 중심으로 인민대중과 군대 당이 일심단결을 하도록 이끄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선군정치를 통해 군사강국을 이룩하고, 이러한 군사력을 대외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군사적 능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대외 협상력 제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 이완,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 등 불리한 국제정세와 개혁·개방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김정일의 대내외 사안에 대한 군의 적극적 활용 성향 등으로 인해 '선군사상'이 북한 전반에 작용하는 가운데 군부의 위상이나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선군정치'를 위시한 최근 북한의 행태와 정세 전망은 우리 안보에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남북한 군사관계에 있어 북한은 체제 내부적으로는 군사력 증강 및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남한에 대해서는 화해분위기를 전략적으로 유도하여 남한 및 주한 미군의 대북 군사대비태세를 약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및 전시 작전계획의 폐기 등 우리 안보에 민감하게 관련되어 있는 요소들에 대해 북한에게 유리한 상황으로의 전개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다.
둘째, 북한은 차후 체제보장의 중추 역할을 할 군사력과 제반 시스템의 강화를 위해 경제협력을 통해 발생할 경제적 이익 및 국외로부터의 지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본들을 그 동안의 경제난으로 투자하지 못했던 군수산업의 재건에 투입하여 군사적 잠재역량을 강화시켜 나갈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체제에 있어 강력한 군사력의 건설과 유지는 어떠한 안보상황의 변화에 있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최우선의 요소로서 군 중시사상에 기초한 군사력 강화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은 미사일 및 핵 기술 보유 등 군사력 강화에 따른 대외 관계에서의 자신감 증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보다 공세적인 대외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과거 보여 왔던 협상 행태들로 미루어 취할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취하고, 자신들이 양보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미온적으로 대하는 양상을 지속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러한 '선군정치'의 지속 가능성과 우리 안보에 미치는 영향들을 바탕으로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 중심주의를 감안하여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른 고려 요소들로 다음의 네 가지 사항들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남북간 경색국면을 조속히 타개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하여야 한다. 과거 남북간의 단절은 북한으로 하여금 한반도 문제를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었고, 한·미간의 공조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지는 등 한반도 안보에 악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최근의 남북간의 경제협력 논의 등 잠정적 유화국면을 양국간 지속적인 대화의 기회로 발전시켜 향후 점진적 관계개선을 위한 기반 조성의 호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한반도 평화 유지에의 노력과 동시에 북한의 도발에 충분히 대응할만 한 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오늘날까지 한반도 적화통일의 대남혁명 전략을 고수하여 왔고, 강경·유화 정책을 병행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핵무기나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과 보유에 힘써왔다. 특히,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기습 및 단기속전속결 의지를 꺾고 독자적 전쟁수행능력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역량 확보에 힘써야 할 것이다.
셋째, 주한미군 감축 방지를 위한 외교활동과 더불어 한반도상의 충분한 전력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한반도의 전쟁 억지력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 미군은 한반도 전쟁 재발 방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특히 우리 국방에서 상당한 부분을 분담하고 있으며, 전력 감축시 우리가 부담 해야하는 국방비 부담이나 전력의 누수현상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주한 미군 전력을 유지하여 전쟁 재발을 억제하고 유사시를 항시 대비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군정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기존의 위협 요소들을 유지하는 한, 그리고 군사력 강화의 틀을 깨고 상 호 공존과 번영 모색의 장으로 나오지 않는 한 한반도 안보를 위한 한·미 공조관계를 더욱 공고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긴장 완화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의 병행을 통해 궁극적인 한반도에서의 안전 보장과 평화통일의 기반 구축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