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한국에는 50여 년간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복수정당제도를 통하여 여당과 야당이 존재해 왔으며, 국민의 의사를 존중한 지도자 선출이 행하여진 듯 보인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계속적인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과 정변 및 쿠테타의 빈번한 발생, 산발적인 정당의 이합집산과 인물중심의 파당적 정당 정치로 공정하고 민주적인 정당정치가 행하여졌다고 보기 어렵다. 건국 이후 수많은 정당이 생성되었으나 생명력을 갖지 못하고 단기간 내에 소멸되었으며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자를 낸 정당은 76개인데 반해, 2회 이상 국회에 진출한 정당은 16개에 불과할 만큼 한국 정당은 지속성을 갖지 못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정당들이 선거 직접에 급조되었다가 선거의 패배와 더불어 소멸되거나,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노선을 불문하고 당리당략에 의해 또는 지도자의 행보에 따라 이합집산하여 다른 정당으로 흡수되거나 신당을 통합, 창당하는 경우가 흔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본 연구는 '한국 정당정치는 지속성이 부족하다'는 가정 하에 해방이후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한국정당의 지속성을 분석하고 이들이 한국 정치에서 제 기능르 수행하지 못하고 소멸해 간 원인을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정치사에서 생성·소멸된 정당의 역사적 경험을 해방 이후부터 5·16까지와 5·16부터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그리고 민주화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시기를 구분하여 정당정치가 전개된 과정을 고찰하고 정당정치의 지속성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해방이후부터 1948년 정부수립까지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적인 갈등이 정당분립의 원인이 되어 정당의 이합집산이 거듭되었으나 한국전쟁 이후에는 뿌리 갚은 반공주의와 군사독재의 물리적인 탄압으로 오랫동안 좌파정당이 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간의 정치적 입장 차이는 계속되어 여촌야도(與村野都), 여동야서(與東野西)와 같은 지역문제들을 비롯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간 균열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4·19와 5·16 등의 정변과 쿠테타는 한국정치에 있어 커다란 변동과 함께 정당의 재편성을 유발시켰다. 4·19로 인해 '자유당'은 급속히 붕괴되었으며 민주당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집권당이 되었으나 자유당 역시 윤보선이 이끄는 '구파'와 장면이 이끄는 '신파'로 분열되어 '신민당'을 창당하는 등 한국정당은 계속하여 혼란스러웠다. 5·16 쿠테타로 인해 등장한 군사정권은 '공화당'을 창당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김종필 계열과 반(反)김종필 계열을 형성하는 등 당내 분열은 여전히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야당에 있어서도 민정당계와 신정당, 민우당 등이 단일화 과정에서 실패하고 뿔뿔히 흩어지는 등 파벌간의 갈등에 의한 정당의 이합집산은 여전했다.
한국의 정당은 원내 국회의원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중앙집권적 성격과 당내 기율을 가지고 있다. 의원들을 각종 정책 표결 사안에 대해 자유투표를 하지 못하고 '당론'이라 불리는 중앙당 지도부의 결정에 철저히 복종하는 거수기의 역할을 한다. 의원들에게 강제되는 당론은 소위 '제왕적 총재'라 불리는 각 당의 총재 즉, 1인 보스(boss)의 의사가 관철된 것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집권당의 총재인 대통령은 당내 권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여 당 운영에 관한 포괄적인 권한을 행사했고, 당의 인력충원을 통제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하였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김영삼, 김대중 등의 정당 지도자들은 군과 경찰, 정보기관을 이용하지는 못했지만 오랜 정당활동을 통해 얻은 풍부한 정치력과 정치자금, 공천권을 바탕으로 정당 조직의 성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지역주의에 의한 '지역적 고정 투표자'들의 존재는 '인물 위주의 정당'을 더욱 부추겼으며 당의 이합집산은 당 총재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었다.
한국 정당정치사에서 파벌화 현상은 특정 시기에만 뚜렷히 존재했던 현상이 아니라 해방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당정치가 파벌정치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은 일정파벌과 연계없이는 정치세계로의 진입이 어렵고, 파벌의 기반이 없이는 정당내에서 정치적 상승은 물론 생존마저도 어려우며 국회의원 공석도 정당간부회의에서 파벌의 boss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에서 이러한 당내 파벌화 현상은 조직의 경직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특정인물에 얽매이게 되어 정당의 자율성도 크게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간의 이념적 대립이 정당분열의 가장 큰 원인이었으나 이후에는 4·19와 5·16 등 커다란 정치변동을 겪으면서 정당의 재편성을 유발시켰다. 또한 정당 내부적으로 박정희와 전두환, 김영삼과 김대중 등 총재 개인을 중심으로 한 당내 기율과 당내에서 주류세력과 비주류 및 중도세력 등의 파벌정치는 인물에 따라 정당의 이합집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정당의 지속성 저해요인 중 이념적 대립이나 정변 및 쿠테타 등 정치환경적 요인은 현재 한국의 민주화 발전정도로 비추어 평가해 보았을 때 정당의 지속성 유지에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파별정치와 인물중심의 정당정치는 한구 정치 및 정당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지금 우리는 상당한 정도의 민주화를 달성 적어도 형식적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세계수준의 민주정치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하부구조도 어느 정도 민주주의를 떠받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보완하고 고쳐야 할 비민주적인 요소가 도처에 산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고 보다 성숙한 정치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 엘리트를 비롯한 온 국민의 정치의식과 태도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며,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마련하고 누구나 예외없이 그것을 지켜야 할 것이다. 진정한 한국정치의 발전은 잘못된 정치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정치의식과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정치문화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은 매우 서서히 축적되는 것이기에 안정된 정당정치의 정착은 상당한 시간을 요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우리의 잘못된 정치적 관행이나 태도를 하나하나 탈피해나가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