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한반도의 해방 전·후인 1942년부터 1950년까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수행하고 전후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냉전과 한국전쟁에 참여하기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미국의 외교안보결정의 주축이 되었던 국가안보회의(NSC)와 그 전신인 3부조정위원회(SWNCC)의 참여부처인 국무부와·군부(각 군부 및 합참)가 어떤 의도를 갖고 논의하였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책을 수립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을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으로 보았고, 이 둘의 발생 원인으로 제국주의적 세력권 형성에 따라 발생한 보호무역주의와 경제블록화 등을 지목하였다. 이렇게 미국에 치명적인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루즈벨트는 미국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재편성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세력권이나 권력정치를 배제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를 만들려 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 한반도는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침탈에서 해방되어야 할 약소식민지국가로 지명되어 신탁통치 대상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국의 대한정책은 대일전 이용과 전후 신탁통치에 맞추어졌다.
종전 이후 미국의 대한정책은 신탁통치의 실행에 그 목적을 두었으나 신탁통치안의 실행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냉전과 대소련 봉쇄정책이 명확해 졌다. 이에 따른 미국의 대한정책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으로 선회하였고, 유엔으로의 한국문제 이관과 대한민국정부수립을 통해 미국은 명분과 실리상으로 대한민국에서의 철군을 결정(NSC 8)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결정에 이르기까지 철수를 반대하고 한국을 지원하자고 주장했던 집단은 국무부의 애치슨 국무장관 및 극동과, 군의 지상전 중시 육군 장성들과 미군정이 있었고, 이에 반대하여 철수를 찬성하고 한국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다고 견해를 밝힌 집단은 국무부의 대서양중시자인 캐넌과 볼렌, 그리고 군의 합참, 해·공군, 육군부 등이 있었다.
NSC 8/2로 절충된 이들의 이견은 합의되지 못하였으며, 대아시아 정책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안보정책에서 일본·오키나와·필리핀 등을 중심으로 하는 태평양도서방위정책으로 선회하는 NSC 48/2에 이르게 되었다. 역시 이러한 정책선회과정에서도 앞서 이견을 보였던 집단들은 한국과 국민당 정부를 놓고 격렬한 논의를 가졌다. NSC 34에서 중국공산당을 인정하고 NSC 37에서 대만을 포기하기로 한 국무부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된 것을 기점으로 애치슨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지원파와 합참을 중심으로 하는 대만지원파의 갈등은 결국 한국과 대만을 모두 포기하는 형태의 NSC 48/2로 절충되었다. 하지만 절충안인 NSC 48/2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못했던 애치슨 장관의 한국지원 의지는 대한원조법으로 이어졌으며, 외회로 넘어간 양국의 지원정책은 절충안으로 합의되어 결국 한국과 대만 양국 모두에게 얼마간의 지원이 지속되게 된다.
1949년 국민당 정부의 중국 대륙상실과 소련의 핵실험 성공으로 인해 심각한 안보위협을 맞게된 미국은 NSC 68을 작성하여 보다 강력한 안보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NSC 68에서 주장한 국방비예산 증액 시점에서 한국전이 발발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은 NSC 68의 예산증액과 맞물려 설명되곤 하였다. 하지만 한국전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은 NSC 68에서 나타난 소련의 팽창주의적 전면전에 대한 위협과 패권국으로써 자유세계에서 미국의 위신을 지켜야하는 압박감에서 비롯하였으며, 개입과정에서는 국가안보회의 참여부처의 과거 성향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개입을 주장했던 집단은 국무부의 애치슨 국무장관 및 극동과, 군의 지상전 중시 육군 장성들이 있었고, 개입을 반대하고 한국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다고 견해를 밝힌 집단은 국무부의 대서양중시자인 캐넌과 볼렌, 그리고 군의 합참, 해·공군, 육군부 등이 그러하였다.
결국 대통령과 한국전 개입론자들은 NSC 68 작성과 전쟁발발 전부터 지속적인 한국지원을 주장한 집단이었고, 반대론자들은 한국에 대한 지원을 반대 해온 집단이었다. 더구나 예산증액의 수혜자들이 찬성집단이 아닌 반대집단인 군의 합참, 해·공군, 육군부임을 볼 때, NSC 68의 예산증액을 위한 개입으로 연관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본 논문에서는 미국의 대한정책 수립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국의 국내외 정세변화와 그에 따른 국가안보회의 참여부처와 정책수립과정을 통해 살펴보았다. 미국의 대한정책은 상위 개념인 세계전략에 종속되어 그 일부분으로 구체화되었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을 논의하고 결정하였던 국가안보회의 참여부처들은 대한정책수립과정에서 상반된 의견을 기반으로 한 논의 과정을 거쳤고, 이들은 한국지원파와 반대파로 나뉘었다. 이들은 해방 후 주요 사안인 NSC 8, NSC 48, 한국전 개입 등에서 그 잠정적인 절충안에 도달하여 정책을 수립하였지만, 근본적으로 부처 간 혹은 주요 인사들 간의 합의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