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전쟁과 분쟁의 대부분이 기습으로 시작되거나 기습을 통해 전세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리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안보환경이 변하면서 전쟁과 분쟁의 성격도 달라졌으며, 새로운 형태의 분쟁이 등장하면서 기습의 양상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양상을 '기습'의 관점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하면 그 안에는 변하지 않는 기본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전략적 기습의 수준에서 전통적인 기습과 비전통적인 기습 사이에 존재하는 기습 성공요인의 핵심을 고찰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전쟁의 주도권 확보 및 정치·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세행위인 전략적 기습과 관련된 기존 연구 자료들을 종합·분석했다. 그 결과 성공적인 전략적 기습은 대부분의 경우에 공자(攻者)의 능력과 방자(防者)의 취약성이 상호작용한 결과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구의 범위를 방자의 취약성 측면으로 한정하여 "방자의 정보순환과정에서 결함이 발생하면, 전략적 기습을 허용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을 설정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문제들을 제시한다.
첫째, 정보순환과정 속에서 방자의 정보실패 핵심요인은 무엇인가?
둘째, 방자의 정보실패가 전략적 기습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셋째, 이 연구의 결과가 한국의 안보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이상의 연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장에서는 전략적 기습과 정보실패의 개념을 고찰함으로써 둘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설명하고, 진주만 공격과 9·11 테러의 성공요인을 방자의 정보순환과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분석의 틀을 제공한다. 사례분석이 이루어진 제3장과 4장에서는 진주만 공격과 9·11 테러 당시 미국 정보순환과정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제5장에서는 방자의 정보실패가 전략적 기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한국에서 전략적 기습의 발생에 대비한 보완사항을 제시한다.
사례분석을 통해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진주만 공격의 경우 정보순환과정 대부분의 단계에서 정보실패 요인들이 작용했다. 미국은 태평양 어딘가를 향한 일본의 공격 가능성은 충분히 짐작했었지만, 공격의 시간, 장소, 방법과 연계성을 가진 첩보 및 정보가 가용하지 않았고, 방대한 첩보의 양에 비해서 필요한 정보의 양이 제한되었다. 그리고 'MAGIC'이라는 신호정보 시스템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인간정보 수집능력이 상당히 부족했으며, 일본의 정보 은폐 능력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하와이의 안전에 대한 자만심과 일본의 능력을 무시하는 미국 정보기구 및 정책결정자들의 선입관이 정보분석과정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반면 일본은 자신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각종 기만행위들을 유효적절하게 수행했으며, 이는 미국 정보기구의 인지적 오류와 맞물려 결정적인 정보실패를 유발했다. 게다가 미국 정보기구의 관료주의적 문화 등으로 인해 정보공유가 제한되었고, 미국을 향한 일본의 최후통첩을 하와이의 사령관에게 즉각적으로 전달하지 못해 기습의 피해를 더욱 증가시켰다.
다음으로 9·11 테러의 경우 테러리즘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정보활동의 대상으로서 색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주만 공격과 마찬가지로 정보순환 과정 대부분의 단계에서 정보실패 요인들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테러리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전략정보와 군사정보 이외에도 법 집행을 위한 정보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는 '뉴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위협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현안과제들을 더 중요하게 취급했다. 또한 테러조직과 같은 비국가행위자에 대응하려면 기술적인 수집역량 보다는 인간정보가 절실히 요구되었지만, 냉전종식 이후로 비밀공작과 인간정보 수집능력이 축소되면서 테러예방에 필수적인 인간정보가 절대로 부족했다. 여기에 수집된 신호정보를 적시에 분석할 언어능력 및 사소한 문제들을 연결하여 내적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정보분석관의 체계적인 상상력도 부족했다. 미국 정보기구는 본토에 대한 항공기 테러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대한 분량의 첩보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해외에서의 테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더구나 미국 정보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관료주의적 부처 이기주의는 정보공유를 방해했고, 알카에다가 미국 본토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만심은 해외에서 제공되는 결정적인 경고들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조지 테닛 CIA 국장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테러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두 사례에서 발견된 수많은 정보실패 요인들 중에서 가장 핵심은 무엇일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요인들이 없겠지만, 정보수집 단계에서부터 정보소비 과정에 걸쳐서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던 방자의 인지적 요인이 결정적이었다고 판단된다. 미국은 진주만 당시 일본의 공격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고, 9·11 테러에서도 미국의 이익에 대한 테러 위험을 공감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분석기구 및 정책결정자의 인지적 오류로 인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방자의 정보실패는 공자의 전략적 기습이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무엇보다 정보기구 및 정책결정자의 인지적 오류가 핵심요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이 결과가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한국은 한반도 주변환경을 고려할 때 절대로 전략적 기습의 무풍지대에 있지 않으며, 핵(核)을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등 당면하고 있는 위협들도 상당하다. 또한 한국사회는 급격한 국제화, 개방화 물결 속에서 테러리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따라서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기구의 지속적 인 변화가 요구되며, 정보순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지적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전략적 기습의 양상도 변했지만, 방자의 정보실패와 직결되는 기습의 본질은 항상 그대로이다. 전략적 기습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인간행위의 본성에서 나오는 인지적인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 기습은 완전히 피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