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현재 내부적으로 많은 도전적인 요인들에 봉착해 있다. 1978년 개혁 개방정책을 채택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하였지만 빈부격차와 인플레, 부정부패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분출되고 있고, 대만문제와 티베트 및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소수민족 문제 등의 국내문제는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와 군부는 이러한 국내문제의 안정을 최우선적인 국가전략으로 간주해 왔다.
이렇게 수많은 국내문제를 지닌 중국의 지도부 및 군부가 국내문제의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고 있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중국의 국내문제와 대외적 군사력 사용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으로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과거 중국의 국내문제가 대외적 군사력 사용을 결정하였다면 미래 중국의 군사력 사용도 국내문제와 연관되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중국의 국내문제는 중국의 군사력 사용과 관련된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중·소 국경분쟁을 전환행동의 사례로 제시함으로써 중국의 국내문제와 대외적 군사력 사용 사이의 상관관계를 도출한다. 중·소 국경분쟁에서 중국이 소련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한 원인에 대한 기존 연구는 중국의 의도를 주로 미래의 악화된 상황 하에서 전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 싸우는 '예방의도'에 의한 것이었다고 평가해 왔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국내의 제반 문제들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전환시키기 위해 외국과의 충돌을 감행하는 '전환의도'의 측면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중국의 중·소 국경분쟁 결정에는 전환의도가 크게 작용하였다. 중·소 국경분쟁을 브레즈네프 독트린으로 인한 소련의 대규모 침공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미국과 연계하고자 하는 예방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기존의 연구들은 중요한 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중-소 국경에서의 군사력은 중국이 유리한 상황에 있었고, 중국 지도부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가까운 시일 내 소련의 대규모 공격이 가능하리라고 예측하지 않았다. 또한 중국의 대미접근은 중·소 국경분쟁의 원인이 아닌 결과이며, 미국이 1969년 초부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표명하고 있는 상태에서 중국이 소련 공격이라는 극단적 카드로 미국을 끌어들이려 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중국의 소련에 대한 전환의도를 자극하였다. 중국의 당시 중국의 국내적 상황은 문화대혁명의 혼란이 극에 달해있는 상태였다. 문화대혁명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의 의도는 1968년 전반 무렵 어느 정도 달성된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문화대혁명으로부터의 혼란이 내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에 직면하자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종료시킬 명분을 찾았다. 이때 때마침 일어난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공격과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소련에 대한 제한적 규모의 공격에 대한 명분을 제공해 주었고, 중국 지도부는 이러한 공격을 통해 국내적 안정과 지도부의 권력 강화를 꾀했다.
이러한 본 논문의 연구는 중국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중요한 몇 가지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먼저 본 연구는 중·소 국경분쟁에서 중국은 상대적으로 강력한 소련에 대해 국내적 불안정을 타개할 목표로 전환행동을 감행하였음을 증명하여 중국이 향후 주변국이나 주요 전략목표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통해 심각한 내부적 불안정을 타개하려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본 연구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중국위협론의 주장과는 달리 중국의 국내적 안정과 성장이 지역 및 세계적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론적 측면에서 본 연구는 중·소 국경분쟁이 국경분쟁과 같은 소규모 전쟁사례를 다루지 않은 폴(T. V. Paul)의 약소국의 전쟁개시 조건 연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사례로서 제시되며, 레비(Jack S. Levy)의 전환이론 연구에서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구체적 사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약소국의 전환행동의 일례로 적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