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존재 시인으로 촉발된 제 2차 북핵 위기는 한반도에 중대한 안보위협을 가져왔고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정책, 불량국가 선제 공격 등 부시 행정부의 강경 외교정책으로 북핵 문제는 악화일로로 달리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이 진행되면서 회담 참가국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지난 2003년에서 2008년까지의 5년간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은 실질적으로 성과를 얻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있다. 5년 동안 회담 참 가국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벼랑 끝 전술로 북핵 문제는 완전한 검증과 핵 폐기를 얻지 못하고 부시 정권은 레임덕 현상으로 형식적인 북핵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여 북핵문제 미해결에 따른 국제사회의 우려를 증가시켰다. 또한 북한은 6자 회담이 진행 중이던 2006년 10월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과정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유일하게 6자 회담이라는 현실적 한계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제사회는 북핵 폐기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으나 북핵 폐기를 둘러싼 검증 합의에 북한이 지연 전략과 지속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군사제일주의를 포기하지 않아 북핵 폐기를 위한 과정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과연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주며 회담 참가국들의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다.
본 논문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자 회담의 5년간 과정을 국가 간 협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관점으로 분석해 보고 6자 회담의 주요 과정별 합의에서 어떠한 협력 요소가 작용하여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에 합의가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어떠한 비협력의 요소가 도출되어 6자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졌는지를 분석하고 북핵 폐기를 위한 성공적 6자회담을 위한 조건은 어떤 것들 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국가 간 협력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협력을 이루기 위한 조건으로는 국제 협력에 참가하는 국가들이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고 국가 상호간 협력을 위한 상호간의 보상 및 관계 개선이 필요하며 국제 협력을 중시하고 지속적으로 국가 간 문제를 협의할 국제레짐의 형성이 중요하다. 이러한 협력의 주요 요소들이 6자회담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6자회담 참가국 간 협력의 성공과 실패요인을 분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분석기준을 제공해준다.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안보 위협을 가져온 제2차 북핵 위기를 이용하여 6자 회담 주최국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유지에 노력하였다. 중국의 주재로 열린 6자 회담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협조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경제지원과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를 반대함으로써 북한으로부터 얻는 중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중국의 2중 전략이 지속되어 6자 회담의 성공적 운영에 제한점을 주었다. 또한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군사제일주의로 인하여 북핵 포기가 쉽지 않다는 점과 부시 행정부 1기에서 보여준 미국 네오콘의 일방주의에 의한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과 이에 따른 북한의 반발로 북핵 문제는 쉽지 않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벼랑끝 전술, 핵실험과 미국의 이라크전 장기화 문제에 따른 국내 여론의 악화, 중간 선거에서의 공화당 패배로 인하여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은 변화되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 계획인 9.19 공동성명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9.19 공동성명 이행 조치인 2.13 합의에 의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회담 참가국들의 공통 인식이 합의되었다.
9.19 공동 성명은 6자 회담에서 최초로 회담 참가국 사이에 합의를 이루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첫째, 국가이익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회담 참가국들이 6자 회담의 파국을 막자는 기본적인 입장을 공유하였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원칙적 합의를 원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경제난 봉착과 국제 사회의 지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은 이라크전 교착에 따른 국내정치 악화와 북한의 핵무장 등 대외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성명에 협력하게 되었다. 공동성명 합의 과정에서 표면적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공통이익을 추구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자국 의 이익 달성을 위한 일시적 합의의 모습을 보였다.
둘째, 상호주의 측면에서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 포기와 회담 참가국의 상응 조치를 주축으로 하여 대북 국제 지원 및 이행 원칙 등 회담 참가국 간 활발한 상호 활동으로 공동 성명이 가능했었다. 북핵 포기에 대한 조건으로 제시된 북한에 대한 에너지 및 식량 지원은 북한에게는 큰 경제적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공동성명에 북한이 합의하였다.
셋째, 국제레짐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의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에 의한 북한 불공격 의사를 표명하였고 회담 참가국간의 관계 정상화와 안보협력 증진 모색으로 북한의 공동성명 협의를 이끌 수 있었다. 9.19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해결의 목표와 기본원칙에 관한 국제레짐의 큰 틀에서 공통해법을 찾은데 의의가 있었다.
9.19 공동성명 이후 북한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인 방코델타아시아(BDA) 내 북한계좌 동결 조치에 대해 자국을 압박하는 정책이라고 철회를 요구하면서 미국의 행동은 9.19 공동성명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비난하여 또다시 6자 회담의 과정은 교착에 빠지게 되었다.
BDA 문제로 6자 회담이 교착에 빠지자 북한은 BDA 문제 해결을 회담 참가의 선행 조건으로 내세우며 미사일 발사 시험, 핵 실험을 통하여 국제 사회에 위협을 가하면서 지속적으로 보상을 요구하였고 제2기 부시 행정부는 북한 정권 교체, 고립화 정책을 탈피하여 변화된 태도를 보이면서 북미간의 직접 대화를 수용하는 정책으로 바뀌게 되어 미국은 마지못해 북핵문제 해결의 1단계 핵폐쇄와 2단계 핵불능화를 위한 2.13 합의에 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북핵 폐기를 위한 명분만을 유지하고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6자 회담은 과연 언제 마무리 될 것인가라는 회의론적 평가가 대두되었다. 북핵 불능화 신고를 위한 2단계 조치인 10.3 합의를 통해 북한은 자발적인 핵 신고를 2007년 연말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약속을 준수하지 않고 2008년 7월 북한은 핵 검증서 채택을 위한 6자 회담에서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교역 법 적용 종료, 경제 에너지 등 경제적, 정치적 실이익을 약속 받았다. 이처럼 북한은 2008년 후반기에는 부시 행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이용하여 마음이 급한 부시 행정부에게 북한의 미신고 시설 검증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미룬채 북한이 북핵 검증에 합의하겠다는 조건으로 테러지원국 해제 및 대적 성국교역법 적용 해제를 얻게 되었으나 미국은 북핵 협상 과정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하여 형식적인 합의로 북핵 문제가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는 표면적인 성공만을 추구하게 되어 북한 핵 협상은 핵검증 합의서 채택 실패 후 교착에 빠지게 되었다.
6자 회담 기간 중에 북한은 핵능력을 증강하였고 핵실험까지 실시하여 6자 회담의 실패라는 평가도 있었다. 공동성명 이후의 6자 회담을 평가해 보면
첫째, 국가이익 측면에서 북한은 핵보유 의지를 계속하여 감추고 핵폐기 협상에서 지연 전략을 추구함으로써 이익을 얻었고 미국은 국내 정치환경의 변화와 정권교체 시기의 도래에 따라 6자 회담에서의 성과만을 중요시 하여 실질적인 북핵 폐기를 위한 핵검증 의정서 합의를 얻지 못했다.
둘째, 상호주의 측면에서 북한은 에너지 지원 및 테러리스트 명단 삭제 등 경제와 정치적 지원을 받았으나 회담 참가국에 대해 실질적인 협력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러한 북한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희담 참가국들은 북핵 검증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6자 회담의 협력 과정은 실패하게 되었다.
셋째, 북한의 핵검증 의정서 합의 반대로 북핵 6자 회담은 정확한 북핵 폐기를 얻지 못하고 북한의 술수에 의해 회담이 교착되었고 회담 진행 간 북한에 대한 참가국들의 지속적인 협력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얻지 못했다. 북한이 각종 합의에서 모호한 표현을 이용하여 회담을 지연시켜 회담 참가국에게 북핵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낮음을 보여줌으로써 6자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국제레짐이라는 신념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여 6자 희담의 전 망을 어둡게 하였다.
그동안의 6자 희담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진행되어 왔고 2008년 말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초기 6자회담에서 국제 제재를 피하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계속 받으려는 북한의 사술과 미국의 정치적 요인으로 합의를 이끌어 왔으나 북핵 신고서에서 북한 보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신고의 제한적 합의와 북핵 검증 의정서 채택 실패로 실질적인 북핵 폐기는 먼 과정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6자 회담이라는 북핵 해결을 위한 유일한 국제 협력 과정에 참여하면서 국가간 협력을 증진시키는 주요 요소를 활성화함으로써 향후 6자 회담 과정에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