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로버트 답네(Robert Lewis Dabney, 1820-98)와 찰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는 성경관은 같은 사상을 가졌으나 교회관과 문화관에 있어서는 다른 견해를 가졌음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였다. 특히, 문화관에 있어서는 두 신학자 모두 그 시대의 문화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들어내었다. 답네와 하지의 신학을 비교 연구한 것은 이들이 제임스 돈웰(James Henley Thornwell, 1812-62)과 함께 19세기 미국 장로회 신학을 개혁주의 토대 위에 건설한 대표적인 신학자들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와 답네 그리고 돈웰은 미국 장로회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기 전까지는 하나의 장로회에서 개혁주의를 수호하였다. 하지만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65)이 미국 16대 대통령이 되면서 노예제도 문제로 남부와 북부로 대립하고, 각각의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남장로회와 북장로회로 분리되었다. 이로써 찰스 하지는 미국 북장로회에 소속되고, 제임스 돈웰과 로버트 답네는 미국 남장로회에 소속되어 각자가 속해있는 장로회의 신학 리더가 되었다. 미국 남장로회의 경우, 돈웰이 1862년에 소천한 이후부터 답네가 19세기 미국 남장로회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19세기에 미국 장로회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 선교사 등은 대부분 하지와 답네의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 초기 미국 남장로회와 북장로회 선교사의 출신 신학교를 살펴보면 그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와 답네의 신학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을 형성한 목회자들이 한국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지속적으로 입국하였고, 이들이 한국 장로회의 신학적 뿌리를 형성했음을 볼 수 있다. 두 신학자의 신학을 알아야 한국 장로회의 선교 초기의 신학적 기초를 이해할 수 있고, 두 신학자를 비교할 때 남장로회와 북장로회의 신학적 유사점과 차이점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본 논문을 작성한 이유는 지금까지 찰스 하지의 신학은 국내에서 폭 넓게 연구되고 있으나 로버트 답네의 신학은 구체적으로 연구되지 못하였고, 미국 북장로회와 남장로회의 신학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비교 연구한 연구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와 답네에 관한 자료와 신학은 대부분 1차 자료에 근거했으며 필요에 따라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물들을 참고하였다. 연구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제1장은 들어가는 말이다. 여기서는 연구이유, 선행연구, 논문주제 등을 다루었다. 제2장은 답네와 하지의 시대적 배경이다. 시대적 배경이 필요한 것은 두 신학자의 신학 사상이 그들의 시대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3장은 답네와 하지의 성경관이다. 그들의 성경관이 결국 그들의 문화관의 형성에 어떤 기초를 이루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었다. 제4장은 답네와 하지의 교회 정치관이다. 이 장에서는 답네와 하지의 교회 정치관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돈웰의 교회정치론를 먼저 언급하였다. 제5장은 답네와 하지의 문화관이다. 당시 남북 전쟁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서 그들의 신학이 노예를 중심으로 하는 이슈를 어떻게 풀어나갔는가를 면밀하게 다루었다. 제6장은 나가는 말이다. 여기서는 하지와 답네의 신학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후 각각에 대해 평가하였다. 끝으로 답네와 하지는 철저하게 개혁주의의 옷을 입었지만, 문화관에 있어서는 두 신학자 모두 그 시대의 문화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감안할 때, 그들 신학의 모든 부분을 맹목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