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본 논문의 주제를 개혁주의 교회의 성찬에 대해 종교개혁시대 성찬론 비교 연구를 선택한 첫째 이유는 성찬론이 조직신학의 핵심 교리들 중의 하나라고 여겨졌기 때문이고 칼빈 신학의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핵심 교리들 중에서 본 논제를 선택한 둘째 까닭은 성찬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가 다소 용이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성찬 논쟁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몸의 임재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인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은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성찬론을 정립해 나갔지만 기독론에 대한 견해 차이와 상이한 환경의 차이 때문에 동일한 성찬론을 수립하지 못했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임재는 '실제적'과 '상징적'인 것을 양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 루터의 공재설이 가장 실제적인 것에 가깝고, 쯔빙글리의 기념설이 가장 상징적인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은 집전하는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 실체로 형이상학적인 변화가 발생한다는 교리이다. 그리스도의 전부가 성체의 각 분자들 속에 충분히 임재하고 있다. 소위 거룩한 성체 성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물질적인 살과 피를 자신들 안으로 받아들인다. 로마카톨릭은 성만찬이 희생제의 행동을 포함하고 있고 미사에서 참된 희생은 예배자들을 대신하여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시 바쳐지는데 이것은 십자가 처형에서와 똑같은 의미에서의 희생이다. 그러나 만약 용서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죄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면, 성체 성사의 성찬은 크게 오염된다. 카톨릭은 사제주의로 자격을 갖춘 성직자가 적절한 형식을 따를 때에는, 떡과 포도즙이 완전하고도 영구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게 된다. 잔은 피를 흘릴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오직 성직자들만 받았다. 성직자는 평신도들을 대신하여 대표적으로 행동한다.
루터파의 성찬의 특징을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입으로 먹고 마신다. 그리고 합당하지 않은 자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이다. 신자는 입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떡과 포도주라고 하는 표징을 통하여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견해는 '화체설'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쯔빙글리에 있어서 성만찬은 회생과 고백의 표적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편재를 부정하여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지상의 성만찬의 장소에 동시에 계실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쯔빙글리에 있어서 장점과 약점은 결국 상징에 대한 이해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만일 상징을 통해 그것이 상징하고자 하는 실체 속에 깊이, 풍부하게 참여하지 못한다면, 성만찬은 신앙생활에 애매모호해질 뿐 아니라 객관적 경험보다는 신자의 주관적 감정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의 영적임재설은 루터의 공재설과 쯔빙글리의 기념설 중간에 위치하면서 성찬론을 전개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하늘에 계시는 주님의 몸의 개념을 성찬에 적용하여 하늘에 위에 계신 주님의 몸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성찬에 반입되어 임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찬을 행할 때 그리스도의 임재는 영적인 것이다.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가 실재할 수 없으나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본체와 연결되고 성도들은 이를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와 결합된다는 것이다. 신앙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연합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즉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현존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가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 안에 현존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