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건축은 기나긴 역사(歷史)에서 삶의 지혜가 묻어있는 창조적 과정의 산물로서 여기에는 한국인의 정서와 경험, 가치관과 생활관, 역사와 문화, 자연과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정신세계나 생활 습속(習俗)의 저변에 깔려있는 풍수지리사상은 자연이 품은 생기(生氣)를 이어받아 자연과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보낼 수 있도록 주택과 묘지, 궁궐과 사찰, 서원과 향교 건축 등의 입지 및 배치 선정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우리의 전통 생활철학이라 할 수 있다.
풍수지리사상에 의하면 땅의 형세에 따라 인간의 길흉(吉凶)이 있다고 하였다. 사람의 빈부와 귀천 등이 모두 그 땅의 지세와 형상에 따라 영향을 받은 것이고, 이것은 좋은 땅에서 좋은 인재가 배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조선은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았던 까닭에 유교적 윤리 규범과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초기에는 관학(官學) 위주의 향교를 설립하였고, 중기 이후 관학의 퇴조와 정치적인 세력에 밀려 낙향한 사림(士林)들을 주축으로 서원이 건립되어 선현을 봉사하는 사묘적(祠廟的) 기능과 강학(講學)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는 교육기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서원은 1871년(신미년)에 서원철폐령(일명, 신미존치)때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사우 중에서 국가에 의해 문화재(사적)로 지정받은 9개 서원(소수, 남계, 옥산, 도산, 도동, 병산, 필암, 무성, 돈암)으로 한정하였다.
본 연구를 위한 방법으로는 크게 기초적인 문헌 조사와 현지 조사, 현지 방문 시 관계자와의 면담조사 등을 활용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본 연구자는 서원 건립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배경, 조영자의 사상 등과 관련된 자료를 토대로 각 서원의 입지특성 분석, 공간구성 및 배치 등에 나타나는 요소를 풍수지리적(龍, 穴, 砂, 水) 관점에서 해석해 보았다.
본 연구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입지적 특성을 보면, 조선의 사립교육기관인 서원은 풍수지리사상을 바탕으로 입지 선정과 함께 건축물의 배치와 공간의 구성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대부분 본 연구의 대상 서원은 산지(山地)의 구릉 밑에 산수의 경관을 찾아 장소를 택하였고, 오직 필암서원만 넓은 평야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 번째, 유교건축의 특성은 엄격한 질서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절대적인 조건을 가진다. 연속된 건물군(建物群)으로 이루어지는 서구의 건축물과는 달리 독립된 구조물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한국 전통 건축의 경우 통일성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축(軸)을 설정하여 건축물 상호간의 관련성 및 위계 질서를 부여하였다. 서원의 주요 공간인 진입 공간, 강학 공간, 제향 공간을 하나의 중심축으로 연결되어 좌우대칭의 정형의 형태를 취하였다.
세 번째, 서원건축의 풍수적 특성의 고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대상서원의 주산은 무곡금성체의 형상이, 안산은 탐랑목성체의 문필봉(文筆峰)이 주를 이루었다. 무곡금성체의 주산(主山)은 오행(五行)으로 금(金)에 해당하고 부(富)를 상징한다. 이것은 강학활동과 정채적 지원을 하기 위한 경제적으로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사림(士林)들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안산인 문필봉은 학문탐구의 목적과 부합되는 것으로 매일 바라보면서 목표지향을 향한 마음을 늦추지 않기 위한 담금질이라 여겨진다.
2. 서원건축의 향(向)을 결정한 일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향은 형세론(形勢論)과 이기론(理氣論)을 바탕으로 선택하게 된다. 대상 서원은 이기론인 좌향(坐向)보다는 형세이론에 따라 선정되었다.
3. 풍수에서 혈처는 가장 핵심적이고 최상의 요건을 갖춘 길지(吉地)를 말한다. 그래서 혈처(穴處)에 가장 중심적인 건물을 앉힌다. 대상서원이 사당이 혈처인 곳과 강당이 혈처인 곳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원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되게 중심건물 배치를 달리 하였다.
4. 대상 서원의 사격(砂格)을 살펴보면 내룡(來龍), 청룡(靑龍), 백호(白虎), 안산(案山) 등이 사신사(四神砂)로서 역할과 기능이 미흡한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장풍(藏風)의 국면을 이루어 성국의 자리에 입지되었음을 찾을 수 있었다.
5. 대상서원은 터를 잡으면서 특히 물이 가까운 곳인 임수(臨水)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고, 수세는 서원을 향하여 유정하게 감싸도는 금성수의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종합적으로 조선의 서원건축은 풍수지리사상에 바탕을 두고 축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풍수지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요소와 인간친화적인 장점을 최대한 살려 현대건축에 접목시키고 참된 교육을 실천하였던 서원설립의 목적이 현대인에게도 필요한 중요한 지침으로 앞으로의 지향하고자 하는 교육 목표에 시사점을 주는 것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