兪琰(1258∼1314)은 남송시기에 태어나 元나라 초기까지 살았으며, 元代의 도교역학을 계승하고 종합하여 발전시켰다. 明나라 황종희가 편찬한 『宋元學案』 「晦翁學案」에 의거하면 유염은 주자학파에 속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주희의 『周易本義』를 위주로 하고, 정이천의 『易傳』을 다음으로 한다고 표방하였다. 그렇지만, 유염의 역학은 義理學보다는 象數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희와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유염은 위백양의 『周易參同契』를 주석한 『周易參同契發揮』에서 漢代와 宋代의 상수역학이론으로 『周易參同契』를 설명하여 도교역학을 성취하였다. 유염은 『주역참동계발휘』에서 상수역학을 긍정하고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고 있으나, 卦象을 비롯한 象數를 內丹修鍊에서 氣運을 운용시키는 것과 일치 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주역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유염은 송원시대의 학문적 주류인 주자학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주역』의 핵심이 卦劃, 즉 象에 있다고 봄으로써 기본적으로 상수역학을 중시하였다.
유염의 역학사상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太極과 陰陽二氣이다. 『주역참동계발휘』에는 陰陽二氣의 思想으로서 太極과 陰陽二氣를 표현한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음양이 합하여 태극이 되고, 음양이 벌려서 四象·五行 등으로 나아가지만 그 핵심은 결국 陰陽二氣이다. 천지자연에서 양의 氣와 음의 精이 만나야 음양의 교감을 이룬다. 이러한 음양의 교접으로 나타나는 하나가 바로 太極이다. 유염은 漢代 상수역의 골격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 다만 이를 단법에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기운의 조화와 운용을 이해하기 위한 比喩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冊曆의 年月日時에 집착하지 말고, 節氣度數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실질적인 기운의 작용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文章에 집착하지도 말고 象에 빠지지도 말라(不必執文泥象)"는 구절로 요약할 수 있다.
말하자면 漢代 상수역학의 폐단이었던 讖緯나 節氣度數에서 벗어나, 象數를 실질적인 기운의 조화를 파악하기 위한 비유로 이해했다는 점이 유염의 상수역사상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유염은 宋代의 상수역을 실질적인 환단원리에 적용하여 단법의 실행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진단의 『無極圖』로써 환단원리의 과정을 설명하며 실질적인 수련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행이나 역학은 수련방법에 동원되는 기운의 조화와 운용을 이해하기 위한 비유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염은 소옹의 『皇極經世書』, 『擊壤集』 등을 인용하면서 선후천과 심법을 해석하며, 선천을 眞一의 태극으로 보고, 음양을 훤히 깨우쳐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유염은 "소옹의 선천은 마음이요, 마음은 태극"이라는 이치로써 先天이 곧 太極이며 道라고 파악하고 있다.
元代에 주석된 유염의 『주역참동계발휘』는 宋代 진단의 「先天太極圖」와 河圖·洛書의 생성설인 龍圖三變之說, 주돈이의 「태극도설」, 소옹의 선천도와 선후천 개념, 『황극경세서』와 『격양집』을 인용하여 상수역학사상으로 주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진단의 무극도를 인용하여 환단원리의 해석에 이용하고 있다.
주역철학사적으로는 주희가 『주역참동계』를 『周易參同契考異』를 통하여 『易』과 관련된 부분을 끌어들여 자기 학설의 기반으로 재개편하였다면, 유염은 『주역참동계』를 완전히 『易』의 입장으로 탈바꿈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유염의 『주역참동계발휘』는 송대 도서역학과 원대 도교역학과 관련한 도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유염의 『주역참동계발휘』는 위백양의 『주역참동계』와 송대 도서역학사상을 계승하여 원대 도교역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