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현재 침체기라고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볼링의 르네상스를 위한 일부분의 노력으로써 한국 볼링 및 프로볼링의 역사를 고찰하여 재조명하고 올바르고 명확히 규명하여 정립 및 구축하는데 있었다. 이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체계적 문헌고찰방법으로 한국 볼링의 변천사를 기술하였고, 특히 한국 프로볼링의 변천사에 관해서는 문헌고찰방법과 함께 한국 제1기 프로볼러로써 활동했던 연구자 자신의 체험적 묘사와 분석을 통해 현상을 인식하는 현상학적 접근방법으로 기술하였다. 고찰하여 기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한국 볼링의 도입기로써 한국 볼링의 최초 시작은 1952년 7월 용산 미8군기지 수동 6레인 볼링장이 생기면서 미군에 의해 도입되어 시작되었다. 일반인을 위한 최초의 볼링장은 1967년 10월 워커힐 볼링장 개장이 아니라 1969년 8월 15일 코리아볼링센터라고 보았다.
둘째, 전개기로써 공식적인 대한볼링협회의 창립은 1969년 8월이 아니라 1973년 4월 23일로 사단법인 대한볼링협회가 문교부 승인을 받은 때라고 볼 수 있었다. 한국 볼링은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을 계기로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침체되었던 볼링이 활성화되고 스포츠화되었다. 이후 대한볼링협회와 볼링계의 지속적인 노력과 시도에 힘입어 아시아볼링연맹 및 국제볼링연맹 가입, 그리고 대한체육회 정식가맹단체 승인으로 전국체전 시범종목 및 정식종목에 채택되면서 경기화시켜 각종 국내외볼링대회 개최 및 실업팀 창단 등 한국 볼링 발전의 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셋째, 한국 볼링의 발전기로써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국제규격의 볼링경기장이 탄생되어 많은 국내외대회들이 유치되어 볼링이 더욱 확산되었다. 특히 아시안게임 볼링경기의 성공적인 개최로 체육특기자 종목에 포함되어 중·고등학교 볼링팀 창단 및 실업팀 창단에 기여하여 볼링 선수 및 저변 확대에 크게 이바지하여 볼링 활성화를 이루었다. 아울러 1988년 서울올림픽 볼링 전시종목 개최를 계기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전세계적으로 한국 볼링의 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어 한국 볼링의 중흥을 이루었다. 서울올림픽 이후 국내에서 볼링장 및 볼링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국민스포츠로써 생활체육으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힘입어 활성화되고 중흥되어 정착되었던 한국 볼링은 1990년대 전문스포츠, 생활스포츠, 학교스포츠 전반에 걸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넷째, 한국 볼링의 침체기로써 1990년대 전후를 기반으로 활성화되고 발전했던 한국의 볼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수요와 공급에서 볼링장 공급의 과잉으로 인한 심각한 불균형 및 IMF 경제위기로 인해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볼링장 파산 및 팀해체 등 볼링계 전체가 총체적인 위기를 맞아 쇠퇴하였다. 이후 볼링산업의 전체적인 퇴보와 감소 등 침체속에서도 2013년 현재까지 한국 볼링은 꾸준히 국내외 대회에서 좋은 기량과 성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올려 왔다. 이러한 노력과 결과들은 결국 다시 한국 볼링의 르네상스를 이룩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따라서 한국 볼링의 르네상스를 이룩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볼링 교육 프로그램 학교 도입에 볼링계 전체가 선택과 집중을 하여 노력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보았다. 학교 볼링이 활성화되면 엘리트 볼링, 생활 볼링 등 전체적인 볼링 스포츠분야가 활성화되리라 판단했다.
다섯째, 한국 프로볼링의 변천사로써 한국프로볼링협회는 1992년에 탄생하여 프로볼링시대를 개막하려고 하였으나 아마와 프로간의 선수선발 및 차출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한볼링협회와의 갈등과 세력 다툼으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1995년에 문화체육부의 승인을 얻어 9월 28일 정식으로 출범하여 한국에서 야구, 축구, 권투, 씨름, 남녀골프에 이어 7번째 프로스포츠로 탄생하였다. 한국프로볼링협회 창립과 더불어 국내 프로볼링시대가 개막되어 초기에는 아직 걸음마단계에 불과했지만 1996년 6개의 프로대회 등을 개최하며 일반인 및 동호인들에게 보다 수준 높은 볼링을 보여주며 국내 프로스포츠 중 최고의 내장객수를 자랑하는 국민스포츠로써 자리잡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TV중계 및 아레나 파이널 시스템 등을 도입하여 즐기는 볼링은 물론 보는 볼링도 성장시켜 그 가능성을 넓히며 활성화시키고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국내 프로볼링의 변천과정에서 1996년부터 시작되었던 프로볼링은 프로선수선발 및 대회 개최가 활성화되어 오다가 1997년 중반 이후 IMF 경제위기와 볼링장 수요 및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프로볼링이 위기를 맞게되어 2000년 전후에는 2개 내지 3개 대회만을 개최하게 되었다. 그러다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한 최평욱 회장과 볼링인 출신으로 제3대부터 현재 5대까지 회장을 맡고 있는 김언식 회장의 노력과 역할로 인해 볼링중계방송을 재개하면서 많은 스폰서가 확보돼 2001년에는 12개 대회를 유치하는 등 현재까지 프로볼링을 유지, 성장, 발전시켜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대회들은 지속적으로 유치되어 활성화시켜 오고 있었으며, 2008년에는 여자프로볼링대회까지 신설되어 보다 전문화된 한국남녀프로볼링으로 성장 및 발전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