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初 金膺顯(1927~2007)은 어려서부터 家學을 계승하고 서예와 한학을 익혔으며, 광화문 현판 교체론이 대두되었을 때 제일 먼저 거론되었을 정도로 누구나 인정하는 이 시대의 최고 실력을 갖춘 서예가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의 서예에 대하여 본격적인 연구와 예술세계의 조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 아쉽기만 하다.
김응현의 서예 연구를 서예사적 배경과 학서과정·서예관·작품분석·서예특징과 영향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서예사적 배경은 김정희 이후 주요 작가들의 서체와 서예의 흐름을 정리하였고, 광복이후 국전과 이에 대한 폐단을 지적한 김응현의 글을 통하여 그의 서예세계를 직접·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학서과정은 7~8세 때부터 당나라 서예가 歐陽詢·顔眞卿·柳公權 등의 해서를 배우고 1930년대 말 이후 한나라 비와 北魏書에 전념하였던 探源期, 古法에 대한 기초를 튼실하게 닦은 기초 위에서, 새로운 변화와 성정을 나타내는 작품을 창작하였던 圓熟期, 그리고 九龍洞天에 은거하면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천진난만하고 탈속적이며 無法이면서 동시에 有法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던 天眞期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광개토대왕비〉가 훈민정음체와 필법의 원리가 같다는 것을 이론과 실기를 통해서 밝힘과 동시에 이를 체계화하여 독자적인 서풍을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서예의 정체성을 확보한 것은 큰 공로라 하겠다.
서예관에서 本源論은 古法을 준칙으로 삼으면서 전통 서예를 통해 법고창신을 한다는 法古遠俗, 국전의 모순과 한국 서단의 올바른 방향을 저해하는 요소에 대하여 棄邪反正과 實事求是의 원칙에 따라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筆法論은 筆正新旺에서 筆法의 중요성, 以形求勢에서는 筆勢의 요점을 말하였다. 따라서 筆正新旺에서는 中鋒·五指齊力·回腕法의 집필법을 강조하였고, 以形求勢에서는 글자와 글자, 행과 행 사이의 승접과 호응의 유기적 필세를 강조하였다. 이는 그가 평생 古法을 연찬하면서 얻은 경험담이기도 하다. 人品論은 書品이 곧 人品이라는 書如其人과 서예 밖에서 공부한다는 字外功夫로 나누었다. 전자는 안동김씨 가문의 儒家的 서예정신을 나타낸 것이고, 후자는 평생 책을 통하여 끊임없이 닦은 그의 學養을 서예관으로 삼았다.
작품 분석에서 한문서예는 고법을 遵守·師宗·崇尙하면서 단정하고 가지런한 整齊美의 풍격이 주를 이루는 探源期, 古法의 기초 위에서 변화를 시도하며 웅강하고 온유하면서 운치 있는 剛柔美를 보여준 圓熟期, 소박하고 간결하며 담담하면서도 심원한 蕭散美의 풍격을 나타낸 天眞期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한글서예는 궁체와 고체를 정제된 문채로 서사하여 典雅美가 강한 探源期, 한문서체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한글서예에서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면서 平正美를 나타내는 圓熟期, 蕭散하면서 質朴한 미를 드러낸 天眞期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전각은 한문과 한글로 나눌 수 있다. 한문전각은 印從書出·印外求印·以書入印을 통하여 豪放古拙한 풍격을 나타내었고, 한글전각은 훈민정음·광개토대왕비·漢簡 등의 특징을 전각에 이용한 印外求印과 漢印·封泥·玉印·銅印 등의 전각을 응용한 印從書出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특히 전각은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서단에 그의 다양한 풍격과 많은 작품들이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서예의 특징과 영향에서 특징은 崇尙古法·險勁厚重·人書俱老로 나누고, 영향은 서예교육·해외교류·문화활동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전자는 그의 서예 특징을 개괄하면서 어려서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몸소 人書俱老를 실천한 그의 歷程이기도 하다. 후자는 서예 정체성 회복을 위한 서예교육, 한국서예의 특수성을 전파하기 위한 해외교류에 대한 노력, 서예의 대중화를 위한 문화 활동에 힘썼던 서예가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김응현은 일본서예와 남의 글씨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편견이 있었고, 또한 너무 법도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으며, 사생활에 관한 문제들을 지적하며 비판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올바른 서예의 교육을 통한 보급과 古法을 바탕으로 하여 法古創新을 이루어 현대서예의 모범을 이룬 점, 특히 〈광개토대왕비〉·〈훈민정음〉 등을 서사하여 한국서예의 정체성을 확보한 점과 해외교류의 물꼬를 열어주면서 한국서예의 위상을 선양한 공로 등은 현대 한국서예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귀중한 발자취이다.
앞으로 본 논고를 시발점으로 삼아 김응현의 서예세계를 더욱 연구하여 한국서예사에서 올바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면, 분명 이 글은 현실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