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무기체계의 도입이 전쟁의 승리를 장담해주지는 않는다. 전쟁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의지가 맞부딪치는 전장이기 때문에,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사람의 능력과 기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우월한 무기체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북베트남을 상대로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 부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물러났다.
불필요한 인명에 대한 희생을 줄이고 중심을 폭격하여 적에 대한 저항의지를 줄이고 이측의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항공전략의 목적이다. 항공력의 출발점이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양상을 극복하고자 적의 군사력보다는 의지에 해당하는 중심에 주목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공전력가들은 적의 의지에 해당하는 중심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중심에 대한 개념은 클라우제비츠가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부터 사용하였다. 그는 중심을 뉴턴의 물리학에서 받아들여 그 개념을 구체화했는데 적의 '힘과 기동에 대한 연결지점(the hub of all power and movement on which everythin depends/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저서가 1권을 제외하고 완성되지 않아 전쟁론이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만 클라우제비츠는 적의 중심을 군사력으로 보고 있다. 적에 대한 군사력 격멸은 적의 전쟁수행의지가 아닌 실제적인 능력인 군사력을 격멸함으로써 적의 전쟁수행능력을 제거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클리우제비츠의 중심과 항공전략가들의 중심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군사력과 적의 의지와 관계된 중심 중에 어떤 것이 전쟁 승리에 결정적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였다. 항공전략가들이 인명에 대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적의 의지를 집중 공격 하였지만 그 결괴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적의 의지에 해당하는 중심은 전략가들마다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주로 적의 인구, 산업중심지, 적의 수뇌부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중심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적의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지만, 적의 인구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 시민들은 겁을 먹기보다는 희생을 묵묵히 감내하였고, 산업중심지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도 주변국으로 부터의 수입 및 생산시설에 대한 복구를 통해서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도부에 대한 직접 공격은 전사를 통해서 보면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현대전에서의 간접적인 통신에 대한 공격을 보면 유선은 무력화 시킬 수 있으나, 무선 통신을 통해서 국민 및 군대와 연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적의 의지에 대한 중심을 무력화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전에 있어서도 전쟁에서 적의 군사력에 대한 공격은 효과가 크다. 그 이유는 재래식전에서 군수물자에 대한 수요가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다. 게릴라전에서 전쟁의 템포는 게릴라군이 가질 수 있다. 전투의 장소, 시간, 빈도를 게릴라군이 결정하기 때문에 군수물자에 대한 요구가 적고, 군수물자가 없을 경우에 전투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정규군끼리 맞붙는 재래식 전투에서 템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물량의 군수물자(탄약, 유류, 식량 등)가 뒷받침되어야지 적과 대치할 수 있다. 화력의 집중을 위해서 많은 양의 물자를 지속 보급해주어야 하는데, 이 보급에 대한 수요가 적에게 취약성을 노출시킨다. 병참망에 대해서 항공력이 공격할 경우에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북베트남이 결국 미군의 요구대로 협상장으로 나온 것은 72년 이후의 기존의 지구전 및 인민전쟁 전략을 버리고 재래식 공세로 나오면서 군수물자에 대한 취약성을 노출 시켰기 때문이다. 미군은 전선으로의 군수물자 유입을 철저히 차단했고 북베트남 정규군은 초기의 기습에 대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대한 템포를 유지할 수 없었다.
군사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걸프전에서 다국적군에 의한 이라크 정규군의 공격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후세인은 결국 평화중재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국적군 항공력에 의한 전략공격에도 후세인은 평화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공화국수비대가 항공력에 의해서 격멸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후세인은 소련과 협상을 시작했다. 후세인의 정책변화는 통신시설, 발전, 유류 등의 붕괴에 의한 것이 아닌 공화국수비대로 대표되는 군사력의 붕괴가 더욱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항공전략의 출발점이 적의 의지에 대한 무력화에 있지만 전쟁의 사례를 놓고 보면 이 중심들의 파괴에 따른 정책변화는 찾기가 어렵다. 산업이 전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장기전이어야 하고, 인구에 대한 공격은 국제적인 비난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에 있어서 대부분의 산업국가들은 핵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보면 산업 중심에 대한 공격은 앞으로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 항공전략도 클라우제비츠가 주장하는 군사력에 대한 중심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