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30년대 전반기 식민지 지배권력이 조선의 私設鐵道정책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타개해나가는 과정과 한계를 분석한다. 특히 1930년 조선공업화정책을 뒷받침할 사회간접자본의 구축에서 조선총독부 역할의 한계와 식민지 지배권력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타협해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1929년 대공황 발발은 조선 私鐵의 영업성적을 악화시켰다. 이로 인해 조선 私鐵에 지급하던 보조금도 부족해졌다. 게다가 15년으로 규정되었던 보조금 교부기한의 만료까지 임박하면서 1930년대 초반 조선사철 운영은 위기에 봉착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사철매수계획을 추진했다. 보조기한의 만료가 다가오는 노선을 매수하면 매수 노선에 교부하고 있었던 보조금에서 매수를 위해 발행되는 공채에 지불하는 공채비를 제한만큼 年보조총액의 여유가 생겨 영업이 악화된 기존 사철에 보조금을 추가로 교부할 수 있었고 사철의 증설도 지원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31년 12월부터 '사철매수3개년계획'을 추진했다. 조선총독부가 1차로 매수를 추진했던 주요 노선은 모두 보조기한이 1932년에서 1935년 사이에 종료되는 노선이었다. '조선철도12년계획'에서 매수되었던 노선들은 신규 부설되는 철도국 소속철도에 介在한 구간이라는 것이 매수의 이유였다면 '3개년계획'에서의 매수 대상노선들은 조선의 사철정책상 문제가 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한편 사철매수는 매수의 반대급부로 지급할 교부공채의 발행을 통해 진행되었다. 교부공채의 발행 권한은 일본정부 대장성에 있었다. 즉, 매수안 추진은 조선사철에 대한 일본정부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대장성은 조선총독부가 추진했던 '3개년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는 매수대상 노선을 줄이거나 매수가격을 삭감하는 등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계획을 추진했지만 대장성은 최단거리 노선이었던 개천철도(주) 노선만 승인하는데 그쳤다.
매수안 추진이 좌절된 것은 대장성이 설정했던 조선교통망의 역할과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3개년계획'의 목적이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개년계획'의 매수대상 노선은 조선총독부와 사철자본가에게는 보조기한 만료가 임박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개발을 위한 사철 증설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매수해야 할 노선이었다. 그러나 대장성은 대륙과의 연결성 강화를 조선교통망의 역할로 보고 종관철도망 증대와 만주 방면 노선 강화에 조선사업공채를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장성은 이와 관련이 적었던 '3개년계획' 노선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채발행 권한이 없었던 조선총독부는 대장성이 매수안에 반대하면 이 계획을 성사시킬 수 없었다.
사철매수는 무산되었지만 매수 대상이었던 사철 노선들의 보조기한 만료가 임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와 사철자본가들은 「조선사설철도보조법」 개정을 통해 보조기한 연장에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대장성은 일본사철과의 형평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조선사철의 보조율 감하도 요구하고 있었다. 이는 보조금 여유분 확보를 통한 사철 증설이 필요했던 조선총독부도 동의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결국 1934년 대장성과 조선총독부 그리고 사철자본가 각각의 이해관계를 타협적으로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보조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이 개정은 '3개년계획' 야기했던 조선사철정책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미봉적 타협이었다. 물론 그 타협은 사철매수를 불승인한 대장성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보조법」 개정만으로는 보조금의 여유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개정 이후에도 사철매수계획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1935년 남조선철도(주)의 매수가 성사되었다. 그런데 남조선철도(주)는 '3개년계획'에서는 매수대상 노선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1943년까지 기존 「보조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노선이었다. 하지만 남조선철도(주)가 매수대상으로 언급된 지 1년 만에 매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남조선철도(주) 노선은 '3개년계획' 노선과 달리 경전선 및 호남선 그리고 경부선을 잇는 종관노선이었기 때문이다. 즉, 남조선철도(주) 노선은 대장성의 종관선 우선 정책에 부합하는 노선이었다. 게다가 여수항을 종점으로 하고 있어 麗關연락선의 연결성을 강화할 수 있었고 이는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추진했던 '多航路主義'에 기여하는 사항이었다. 이로 인해 '3개년계획'에서의 노선들과 다르게 남조선철도(주) 매수는 대장성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