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이 낙서를 해놓은 듯한 그림이 상상도 하지 못할 고가에 팔리고, 현대미술사에 기념비적인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작품으로서 남자용 변기가 당당히 미술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미술이다. 단토(Danto)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눈으로는 도저히 식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예술이 더 이상 나아가야 할 특정한 내적 방향성을 상실한 지금,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대미술의 극한의 다원주의적 성향과 시장경제의 발달이 맞물려 현대미술시장은 지금까지의 미술사에서는 본 적이 없는 현상, 경제적이고 상업적인 가치가 미학적 본질주의적 가치를 압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술시장이 단순히 미술작품의 공급과 소비를 중재하는 기구로서 작용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미학적 가치를 생산하고 통제하는 중심 헤게모니로 작용하고 있는 지금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방법은 ‘예술이란 무엇인가’하는 본질주의적 질문이 아니라 바로 미술시장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예술이 사회적 구성물임을 인지하고, 내재적 가치를 넘어 광범위한 사회제도 안에서의 예술을 파악하려 했던 예술제도론의 ‘artworld(예술계)’ 개념을 바탕으로 현대미술과 현대미술시장의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예술계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아서 단토(Arthur Danto), 이를 바탕으로 예술제도론을 발전시킨 조지 디키(George Dickie), 사회학자로서 예술계 개념을 도입하여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진행한 하워드 베커(Howard Becker)의 이론은 현대미술과 미술시장을 분석하는데 있어 상당한 시사점을 지닌다. 먼저, 현대미술은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기 이전에 예술품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이 힘들어진 지금, 단토와 디키의 비평담론은 예술의 내재적 특질이 아닌 사회적, 맥락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성립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 또한 집단 행위로서의 예술과 예술 주체들의 활동 방식을 결정짓는 관습에 주목한 베커의 논의는 미술시장 발달에 따른 예술 행위자들의 권력 구조 변화와 그들의 행동 양식 변화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틀이 될 수 있다. 예술계는 하나의 고정된 틀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체계이다. 현대의 예술계(미술계)가 내포하고 있는 현실은 미술시장의 성장이 만들어낸 시장미술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