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이후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 각 종파의 선교사들은 선교사업, 의료사업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교육사업을 추진하였고, 기독교의 교육사업은 오늘날 한국 교육의 기초가 되는 '근대 교육'의 시작이며, 한국 개화 운동에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구한말 서당과 향교 등의 전통적인 교육기관만 있었던 전북지역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전북지역에 선교부를 개설하고 교육사업을 시작하며 전주에 1899년부터 시작된 해리슨 선교사의 주간학교를 발전시킨 신흥학교와 매티 테이트 선교사가 6명의 소녀로 시작한 기전여학교가, 남장로교 7인의 선발대의 선교사 전킨(W. M. Junkin) 부부에 의해 군산에 영명학교와 멜볼딘여학교가 각각 설립되었고 각 지방마다 교회가 설립되면서 교회 자체적으로 학교를 세워 운영하기도 하였다.
전북지역의 기독교학교는 학교 내에서 직접 농장을 경영하거나 공업과를 통해 목공, 철공 기술을 가르치고 실업·직업·가사·재봉 등의 실업교육을 모든 학생들이 받을 수 있게 하여 노동과 근로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며 자조자립의 정신을 길러 가난한 기독교인 가정의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생계를 책임질 수 있도록 하였다. 기독교학교의 교육은 양반·서민의 계급과 성별에 차별 없이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러한 평등적이고 민주적인 교육은 기전여학교와 멜볼딘여학교에서 여성교육으로 이어져 남성중심의 사고를 넘어 여성 스스로가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음악·체육교육을 통하여 신문화를 보급하는 한편 음악과 체육활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함양하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출할 수 있었으며, 의학이나 과학교육을 통해 근대적 지식을 전파하였고 과학 기술의 보급을 통해 근대화를 촉진시키며 학생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일본은 식민지교육정책으로 조선교육령을 비롯한 각종 관제와 규정으로 공립학교를 세워 운영하였는데 이들 역시 음악과 체육교육을 실시하였으나 극히 제한적이었고, 적극적으로 실업교육을 강조하였으나 이는 경제적 수탈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며 일본의 식민정책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압박과 정규학교와의 차별 속에서도 기독교학교의 교육과정은 기독교적 교육환경을 유지하며 학생들의 실력을 키우고 삶에 모범이 되는, 나아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도록 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전북지역의 각 기독교학교에는 조선에 전반적으로 닥쳐온 위기를 신앙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신흥학교의 김가전 선생과 기전여학교의 방애인, 박현숙 선생, 영명학교의 박연세 선생, 멜볼딘여학교의 고석주 선생, 그리고 서문밖교회의 김인전 목사와 배은희 목사 등과 같은 기독교적 민족주의자인 교사들이 있었으며 이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애국·독립·민족정신을 배워나간 전북지역 기독교학교의 학생들은 각 학교 내에서 일본어 시험을 단체로 거부하거나 동국역사 등 금지된 책을 몰래 읽거나, 일본 국가·동방요배 거부 등의 크고 작은 행동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을 이어나갔다.
이와 같이 전북지역에서의 최초 3·1 만세운동이 영명학교와 멜볼딘여학교가 중심이 된 군산지역에서였다는 점과 이어 전주지역에서도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가 주도하는 만세운동이 일본의 무자비하고 처절했던 진압 속에서도 목숨을 잃어가며 일본에 저항한 점, 10년 뒤 일어난 거국적 광주학생항일운동에도 다시 한 번 적극 계획하고 주도하여 "대한독립만세!", "동감만세!"를 외친 점 등은 전북지역 기독교학교의 다양한 근대적 교육과 민족교육, 그리고 신앙을 통해 배양되고 고취되어온 애국·민족정신의 결과였다.
전북지역의 기독교학교가 실업·여성·과학·예체능 등의 교육활동을 통해 서양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보급하고 근대적 교육제도를 확립하며 한국 교육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준 사실과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떠나 평등하게, 오히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며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사실, 또한 기독교학교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신앙'을 통해 함양된 민족정신으로 전북지역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한 각종 활동에 기독교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적극 참여하며 주도한 사실은 그 시작이 비록 기독교 포교정책의 하나로써 실시한 교육사업이라 할지라도 전북지역 기독교학교가 이 지역과 근대교육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하기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