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존엄한 삶이란 자기동일성의 굴레에 갇힌 채 나르시시즘적, 유아론적 자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자와 관계를 형성하며 타자의 무한성으로 초월, 성장하는 윤리적 주체가 되는 것임을 밝히는 데 있다. 극단의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의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피로와 우울, 소외현상이 최고의 정점에 다다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치명적으로 위협받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 -'존엄한 삶이란 무엇인가?', '참된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답을 '타자와의 관계 형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책임과 사랑'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현대인은 자신의 소유와 안전에만 집착할 뿐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발견되는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 타인의 고통 등에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윤리와 책임, 사랑과 같은 가치는 현대인에게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여겨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책임 또한 물질로 보상되는 것, 관계조차 구매 가능한 것이라는 인식마저 팽배해 있다.
그러나 '우주 안에서의 나의 위치', '우리 안에서의 나의 역할'을 망각한 채 가족과 이웃, 공동체에 속한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가 없는 삶, 타자를 철저히 배제, 제거시킨 후 홀로 남겨진 나의 삶을 채우는 것은 존재론적 고독과 무의미, 허무, 우울, 불안, 고통뿐이며 그 결과 존엄한 '나'의 삶 또한 함께 제거되는 비극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참된 가치가 실현되는 존엄한 삶을 위해 '나'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중심적이고도 유아론적인 해석의 지평을 벗어나 나와는 전적으로 다른 타자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타자와의 만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나의 '나됨'을 확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그 무엇에도 종속되거나 폐기될 수 없는 '나'의 견고한 주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주체성을 확보한 자만이 타자에게로 초월하며 진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참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책임과 존중, 환대, 그 안의 질서인 윤리는 타자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나의 존엄한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의 이성적 판단과 자유에 앞선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실천이 이루어질 때 나와 타자 사이의 인간다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