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서울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오래된 장소를 기록하는 과정을 담은 이미지 연구이다.
신도시로 이사와 몇 년째 살면서 언제부터인가 오래된 동네나 가게, 물건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인다. 새로 만든 계획된 도시에서는 이러한 옛 추억을 찾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도시의 경우만은 아니다. 서울에서도 재개발이 급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억속의 장소로만 남게 되면서 이제는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가치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빠르게 변해가는 동안 추억과 역사가 담긴 장소는 그렇게 잊혀져 간다. 급속도로 변하는 도시 속에서 과거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그림으로 남기고자 한다. 긴긴 세월 동안 인간은 그림을 통해 다양한 삶의 흔적을 남겨 왔다. 역사적 가치로 보면 그림은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다. 또한 그림은 실체가 없는 형상도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 수단이다. 작가의 생각과 바라보는 시선이 녹아 생동감을 전하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서울미래유산에 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성우이용원'이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었다.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건물 외형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잊고 있던 과거의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듯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곳이었다. 도시가 빠르게 변해가는 우리나라에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이미 소문난 곳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자료 수집과 여러 번의 방문을 통해 장소를 탐구하였다. 사실 이발소라는 장소가 대중적인 추억의 장소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이발소의 추억을 경험할 세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용원의 모든 경험은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이런 관점에서 '성우이용원'의 현재 모습과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상들, 그리고 얽혀 있는 소소한 이야기 등 이용원을 통해 보고 느낀 대로 자유롭게 그렸다. 오늘날 이용원이라는 장소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성우이용원은 90년 넘은 긴 세월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간직해왔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성우이용원을 표현하고자 판화를 시도해보았으며 그 과정 중에 동판화로 아티스트 북을 만들기도 하였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한 시대의 특정한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의 모습을 이미지로 기록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이 논문을 통해 삶의 흔적이 담긴 오래된 장소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