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깨끗한 거리와 적절한 시설물을 갖춘 가로공간은 쾌적한 도시환경을 제공해준다.
서울은 인구 천만의 거대 고밀도시로써 공간을 비우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과도하게 점유한 구조물과 시설물을 철거하고 통합하는 노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로수에 기대놓은 쓰레기봉투나 사유물의 적치, 건물 앞 전면공지에 주차한 차량, 펜스 옆이나 가로등에 거치한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공적 공간을 사적인 용도로 이용한 흔적들이다. 과도한 도시 구조물과 시설물도 그렇지만 무분별하게 채워진 행위의 흔적들도 공간을 비좁고 복잡하게 만든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는 장소는 경고판, CCTV, 펜스 등을 설치하여 계도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다. 또한, 공간을 비우기 위해 또 다른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공간에서 필요한 시설물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 또는 그 용도를 모르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려 한다. 이때 판단의 단서는 대부분 그 공간과 시설물에 부여된 기능이나 용도인 의미적 정보보다 외형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시지각적인 정보에 의존하려 한다.
사전 관찰 과정에서 사람들이 공간에서 경계로 인식되는 시지각적인 요소에 따라 행동하고 있음을 발견하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시각으로 확인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경계도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건축물을 포함한 모든 구조물과 시설물들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시지각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공간을 비우기 위해 물리적 요소를 제거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계도하는 행동적 접근 방법에서 벗어나 공간 구성 요소의 지각과 해석의 문제로 관점을 바꿔 해결안을 찾아볼 필요성을 인식했다.
본 연구는 공간 해석과 행동의 단서가 되는 시지각적 경계에 대한 구체적인 유형과 속성을 밝혀, 같은 공간에서도 시각적 개방감과 확장성을 줄 수 있는 시지각적인 효과와 공간의 개방감과 미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적인 시설물 없이 공간을 절충해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발굴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에 따라 관찰 연구와 이론 연구를 통해 공간 경계 해석과 행동 유형의 현상적 특징과 지각에 따른 행동 전환 체계를 파악하여 시지각적 경계의 유형을 도출하였다.
시지각적 경계의 유형은 '보이는 경계'와 '보이지 않는 경계'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보이는 경계는 '입체경계'와 '표면경계', 보이지 않는 경계는 '가현경계'의 3가지로 나누어 용어와 개념을 정의하였다.
시지각적 경계를 지각 체계에 따라 해석하는 과정에서 Rizzolatti의 '물체 감각 표상의 행동 전환 처리 모델'을 시지각 처리 과정의 전반을 다룬 '시지각의 처리 과정과 병렬적 경로 처리'모델과 연계하여 종합적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서 3가지 경계는 국소적 순환 체계에 따라 형성되며 행동 전환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었다.
특히, 입체경계와 표면경계는 물체의 지각 과정, 가현경계는 물체 배치와 공간 해석에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관찰에서 발견된 현상적 특성과도 상당한 일치를 보였다.
이를 단서로 시지각 체계에 Rizzolatti의 모델을 적용해 '시지각적 경계의 순환·병렬 처리 모델'을 재구성하여 본 연구의 해석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다.
재구성한 모델을 이용한 분석 과정에서 사람들이 공간에서 점유할 위치를 선정하는 기준과 계획적인 공간에 물체를 배치하는 기준, 그리고 공공 공간에 행위 흔적을 남기는 기준이 모두 공통적인 방식을 따르며 가현경계의 형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시지각적 경계의 공간 물체 배치 예상 모델'을 제안하였다. 이 모델은 분석 과정에서 행위의 흔적이 생성되는 세부적 위치 파악과 예측에 활용되었다.
분석 연구에서는 '시지각적 경계의 3가지 유형'과 '시지각적 경계의 순환·병렬 처리 모델' 그리고 '시지각적 경계의 공간 물체 배치 예상 모델'을 해석 도구로 이용하여 수집한 관찰 자료를 심층 분석하였다.
그 결과 12가지의 시지각적 경계의 속성을 도출하였다. 도출된 12가지 시지각적 경계의 속성들은 행동적 속성과 구조적 속성으로 구분하여 개념을 패턴화하고, 연구자의 견해를 덧붙여 가로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분석과 기획 및 디자인에 응용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의 형태로 발전시켰다.
12가지 시지각적 경계의 속성은 공간에 형성된 시지각적 경계를 통해 사람들의 공간 인식과 행위를 예상할 수 있고, 공간 계획 및 디자인에 적용해 공간 구성의 시각적 효과와 목적에 따라 이용자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단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공간에 예기치 않게 생성된 다양한 시지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여 시각적 확장성과 개방감을 확보한다면, 같은 크기의 공간도 더욱 넓고 깨끗하게 느껴지게 할 수 있다. 또한, 자의적 해석을 유발하는 시지각적 요소들을 제거하여 행위 흔적을 줄일 수도 있고, 인위적으로 공간에 경계를 형성하거나 변형·가공함으로써 행동을 유도하고 공간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공간은 복잡하고 다양한 인과 관계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난다. 또한, 유사한 현상도 현장의 조건에 따라 발생 원인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시지각적 경계의 속성을 해석의 도구로 이용한다면, 장소마다 반복되는 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효율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이는 관점을 사물 중심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무수히 늘어만 가는 가로환경의 다양한 시설물들은 이를 이용하는 인간 중심으로 바라볼 때 패러다임 전환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른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