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어린이의 '장소만들기(place-making)' 에 주목하여 학교라는 일상공간을 배경으로 어린이들이 어떠한 지리적인 수행과 실천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장소를 창조하고 그곳에 거주하게 되는지, 그 과정 전반에서 일어나는 특징적 양상은 무엇인지 탐색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어린이에게 장소는 자아 성장의 토대로서 안정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 형성의 배경이 되며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린이의 장소만들기는 어린이가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물리적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장소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즉, 장소만들기는 어린이를 일상공간에서 자신의 장소를 만들어가는 지리적 주체로 부상시키며, 어린이가 공간에 거주하며 장소와 관계를 맺어가는 심리적 차원까지 반영한다는 점에서 장소만들기 활동에 대한 이해는 초등지리 학습자로서 어린이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
특히 학교는 어린이가 실제로 경험하는 일상의 공간을 담고 있는 삶의 장으로서 단순한 학습의 장을 넘어 어린이들의 경험과 의미가 녹아있는 장소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문화기술지 연구 방법을 통해 학교 공간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10명의 어린이들의 장소만들기 행위를 파악하였다. 관찰 및 인터뷰의 방법을 활용하여 어린이들이 학교 공간에서 보이는 지리적 행위 및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였으며, 부수적으로 어린이들의 글쓰기, 그림 그리기, 사진 저널(photo journal) 작성하기 등의 방법을 통하여 어린이들이 장소에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장소 내러티브' 로 표현된,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물리적 공간과 사회적 자원을 점유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활동성을 충족시키는 장소를 선택하거나 안정감을 주는 나만의 장소에 머무르고자 하는 등 개인적 특성이나 욕구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나타냈다. 또한 공간에서의 이동은 어린이들에게 소속감을 형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일부 어린이들은 학교 내의 여러 공간을 이동하며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과 관계 맺음으로써 소속감을 가진 반면, 정반대로 자신과 또래집단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을 발굴하고 그곳에서만 머무름으로써 특정 장소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작고 친밀한 '가족' 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공간에서의 이동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장소 내러티브를 통해 어린이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장소에 접근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학교 공간에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장소만들기가 모든 어린이에게 고유하고 개인화된 과정임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의 장소 내러티브에서 도출되는 공통적인 사례로서 장소만들기 활동의 특징적 양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린이들은 공간을 다감각적으로 지각하며 이는 감정과 연결되어 특정 공간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다. 둘째, 특정 공간에 이름짓기는 해당 공간에 어린이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직접적인 행위로서 공간이 그들에게 장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어린이들이 공간을 소유물로 채우고 그들만의 경험과 역사를 축적하는 것은 그들에 의해 점유된 장소라는 표현이며, 특정한 장소에 대한 소속감과 소유의식을 바탕으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나의 영역' 혹은 '우리의 영역' 으로 인정되는 장소를 만드는 중요한 행위이다. 넷째, 공간의 배치는 공간 내에서 어린이들의 의사소통 및 이동 양상에 변화를 일으키며, 공간에서의 이동과 방문은 어린이들이 새로운 환경과 만나게 하며 장소 경험의 범위를 확장시킴으로써 장소만들기의 공간적 범위를 넓힌다. 다섯째, 공간에서의 소외는 일시적으로 어린이의 장소만들기 능력을 제한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린이가 대안적 장소를 찾도록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장소만들기 유형 중 하나이며, 이는 특정 공간에서 외부자적 장소감을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공간에서 다시 자신의 장소를 만들게 됨을 부각함으로써 장소가 우리의 삶의 뿌리이며 장소만들기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소만들기 활동들은 어린이의 일상에 중충적으로 존재한다.
어린이의 장소만들기가 가지는 초등지리교육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 공간에서 장소만들기는 학교를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적 성장을 지원하는 장소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이러한 이해에 수반되는 의미와 의도는 학교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역할을 강조한다. 둘째, 어린이의 장소만들기는 어린이들이 각자 장소에 어떻게 반응하며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주어 학습자인 어린이의 삶을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셋째, 어린이들이 장소만들기 활동을 반성적으로 바라보게 하여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를 인식하게 하는 것은 지리교육이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여 의미 있는 초등지리교육을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초등지리교육에서 장소만들기에 주목하는 것은 초등지리교육의 심리적 기초로서 학습자의 삶에 그 기반을 두고자 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는 어린이를 공간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적 존재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어린이들이 그들의 삶의 장소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향유하도록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