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과학기술의 진보는 이미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출생 전 인간의 유전적 조성을 조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며, 그 결과 우연에 맡겨졌던 인간의 유전형질은 치료의 대상인 동시에 선택 가능한 조건이 되었다. 이에 따라 아픈 형제나 자매의 공여자가 되기 위해 질병 유전자가 없는 배아를 선별해 태어난 아이를 의미했던 "디자이너 베이비"의 개념은 건강한 신체조건, 더 나아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능력이나 외모와 같은 인간의 조건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전적 조성을 직접적으로 편집하여 태어난 아기를 설명하는 데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생식에 관한 결정이 국가나 특정 집단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던 과거 우생학과는 달리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전적 결함이나 장애에 대한 사회·문화적 편견이나 비용-편익적 압력과 같은 다양한 차원의 외부적인 요인이 개인의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디자이너 베이비를 만들려는 부모의 유전적 개입 행위는 과거의 우생학처럼 유전적 조건에 따라 인간을 태어날 가치가 '있는' 생명과 '없는' 생명으로 구분하는 우생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 가정과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좋은 유전적 조건을 갖고 태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은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존재' 그 자체로 인격으로서 존엄성을 가지며 무조건적인 사랑과 책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유전자로 환원하여 자의적으로 설정한 기준에 의해 서열화하고 부모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행위는,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또 아이를 출산하는 것에 관한 선택의 자유가 부모들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이 우선시되는 오늘날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위협하는 행위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왜곡된 신념과 그릇된 가치관을 탈피하여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책임있는 자유를 동반하는 바람직한 인간관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의 예방과 치료를 증진하고 전 생애주기에 걸친 도덕적 감수성 교육, 그리고 사회적 연대를 통한 인격적 환대의 문화가 만들어질 때 서로의 다름을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