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노동하는 공간과 일상을 시각 이미지로 기록한 연구 과정을 담고 있다. 크게 시간의 흔적이 남은 공간, 도구, 인물로 나누어 성실하게 삶을 꾸려온 아버지를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강릉의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다. 80년대 조성된 공업단지에 위치한 '합동기공'은 50여 년 인생이 담긴 아버지의 일터이자 가족들이 성장해온 집이다. 복잡하고 오래된 기계들이 자리 잡고 있는 철공소는 나에게 있어 일하는 장소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아버지가 꾸려온 역사가 발을 딛고 있는 바닥, 손으로 짚은 벽에 남아있다. 그 안은 끊임없이 일구어낸 노동의 숨결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쇠를 다루는 장인이다. 철공소에는 무엇인가로 만들어질 것과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있다. 그리고 이를 예술처럼 만들어내는 노동자가 있다. 성실한 노동자의 시간은 고스란히 공간 전체에 스며든다. 그 자취들로 나는 아버지의 삶을 읽을 수 있었다. 철공소는 창작의 공간이라 많은 자재와 도구로 채워져있다. 낯선 공간이 잘 읽히기 위해서는 맥락을 잡아 기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기록을 크게 '철공소'와 '아버지'로 나누었다. 전자는 공간의 풍경과 개체를 통해 장소 기록에 초점을 두었고, 후자는 삶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전달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현장은 아버지에게만 국한된 장소가 아니다. 나 자신의 기억과도 맞물려 감정은 고스란히 그림에 드러난다. 철공소를 추억하고 따뜻한 시선이 담긴 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빛의 온도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연구에서는 다양한 시점으로 화면 기록을 하므로 방법이 모두 동일하지 않다. 예를 들면 오래된 기계는 정보 기록의 가치를 생각하여 구조 표현에 힘을 실었다. 완성작들은 다양한 색채와 화면을 보여주지만, 오직 아버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공간에 담긴 서사를 다시 읽어보는 일은 긴 호흡이 필요했다. 너무도 익숙하여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부녀 관계의 거리를 한 발짝 떨어뜨리자 지나쳤던 일상을 환기된 시점으로 새로이 마주할 수 있었다. 자식과 기록자의 중간 지점을 찾고 나서야 담담하게 그림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 연구에 담긴 아버지는 노동으로 사회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그 시대 청장년층의 현재다.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이 도시 속에서 현대의 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나의 기록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삶을 탐구하고 공감하는 매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