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격동기에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과, 해방과 함께 찾아온 전쟁의 참화 속에서 피폐해진 우리나라 서화계의 발전을 위해 많은 족적을 남긴 소전 손재형의 생애를 알아보고, 그가 그린 문인화의 연대 생애주기별 분포도와 문인화 작품의 화제 분석 및 구도의 조형성 등을 조명해보았다.
소전 손재형은 남도 문인화의 본 고장인 진도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家學으로 서예와 한학을 공부하며 지냈다. 그는 일찍이 서울에 상경하여 양정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성당 김돈희의 상서회에 입문하여 여러 가지 서체를 배우고 서예 문인화 등을 공부하여 우리나라 근 현대 서화계에 크나큰 역할을 하였다.
소전은 일찍이 조선미술전람회, 약칭[국전]에서 입상하는 등 서예에 두각을 나타내며 篆隷體를 가미한 독창적인 소전체를 개발하여 후학들에게 지도하였으며, 진도 벽파진에 세워진 이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는 소전체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글 서예에서도 궁체와 판본체위주의 서체에서 전서체의 筆意를 가미한 독특한 한글 서체를 개발하여 후세에 남겼다.
소전은 문화재 수집에도 탁월한 재주를 보여 많은 작품들을 수집 하였으며 특히 국보 180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새한도〉를 전쟁의 참화를 무릅쓰고 일본에 건너가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는 국립 박물관의 문화재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애쓴 일화들도 전하고 있다.
소전은 정치에도 입문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문화예술정책 분야에도 많은 일을 하였다. 또한 1949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 약칭[선전]의 창립에 중추적인 역할로 참여하기 시작하여 국전이 폐지될 때까지 30여 년 동안 관여하여 많은 功過를 남겼다. 소전은 書의 명칭을 조선시대에는 중국에서 쓰던 書法과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서 쓰던 書道라는 명칭을 우리만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書藝로 쓸 것을 주창하여 오늘 날에도 우리만의 서예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이렇듯 소전은 일제강점기에 청년 시절을 학습기로 보내고 해방이후 국전시대와 정치인으로서 줄곧 서화계의 중심에서 있었다. 이에 서예 발전과 문예중흥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하기도 하였으며 그가 지병으로 사망하기까지 서화계에 수많은 공과를 남기고 1981년 6월 15일 영면하여 대한민국 예술원장으로 삶을 마쳤다.
소전은 문인화 작품을 다수 남겼는데 본 논문에서는 문인화를 중심으로 생애주기별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연대별로 작품을 수록 분석 하였으며, 소전 문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의의 등을 알아보았다.
소전의 청년기(1920~1942년)의 작품은 그가 젊은 시절 학습기의 작품으로서 소전 문인화의 특장 이라기보다는 글방그림·사계산수도·소나무·석란도·탁족도·초충도·청공도 등 비교적 여러 종류의 화목을 시도하는 단계의 작품들로 보여 진다. 그러나 청년기에 제작된 작품의 채색화의 색채는 강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구도나 묵색의 농담은 무리가 없다. 작품 화제의 서체는 소전의 전성기의 서체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전 문인화 작품의 대부분이 중·장년기(1943~1966년)에 제작되었으며 이 시기의 작품은 난·죽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소나무·연·포도 등의 군자류의 화목과 기명절지 형태의 글방그림 청공도, 수묵산수 등이 다수 있다. 중·장년기 작품 77점 중 난 그림이 21점으로 가장 많고, 군자도 16점 등의 순으로 다양한 화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전의 노년기(1967~1981년)는 그가 지병으로 병석에 있던 기간이 많아 작품이 많지 않다. 이 시기의 작품은 난화 3점, 대나무 그림 1점, 산수화 2점 합작도 2점이 전할뿐이다.
소전 문인화의 전체적인 작품의 제작은 사군자 중에서 난과 대나무 그림이 가장 많고 군자도 기명절지형태의 청공도 등 다양한 군자류의 화목들로 구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전 문인화의 화제는 주로 古人들의 묵시를 인용하여 題를 한 것이 많고 내용은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있는 글을 적은 것이 많다. 작품의 구도적인 특징은 종축형태의 작품보다 횡축형이 대부분이다. 횡축형의 구도는 화면의 중심부 우측에 그림의 중심을 이루고 방향이 좌측으로 향하는 형태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소전의 모든 군자류의 작품들은 거의가 괴석을 함께 그린 것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소전이 괴석 그림을 무척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전은 이미 '소전체'라는 서체의 개발로 서예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며 예술 문화 행정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으나, 문인화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잘 조명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여 미약하나마 소전 문인화의 새로운 조명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데에 본 논문의 의의를 두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