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분노든, 사회적인 현상과 같은 공적 차원에서 일어난 분노든, 이는 모두 개인의 경험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의 내적인 조건과 외적인 조건에 따라 그 경험에 대한 개인의 인식과 이해, 해석의 지점과 양상이 달라진다. 이 연구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분노와 저항의 마음이 연구자의 내면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경험되었는지, 그 경험과 이해의 과정에 대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고, 분노와 절망에 몸이 무너지고 정신과 영혼이 해리된 것 같은 상태를 경험했다. 사건 자체에 대한 괴로움도 컸으나 세월호가 점점 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구조되지 못한 304명이 수장되는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봐야 하는 기괴한 상황은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특히, 국가가 국민의 죽음 앞에서, 자식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과 슬픔에 절규하는 유가족들에게 보인 반응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국민들의 모습에서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존재를 압도했다. 이 마음은 깊은 무의미감과 무력감을 증폭시켰다. 상담과 명상의 과정에서 이어졌던 내면의 질문을 상기시켰고 이질문은 보다 분명해졌다.
'수행자는 분노하지 않아야 하는가. 수행자의 분노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연구는 분노와 저항의 마음을 지켜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연구자 자신에게 어떤 내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준다. 분노와 저항의 마음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철학적인 사유도 있으나 상담과 명상 경험을 통해 체화된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과 지켜봄', 이를 통한 이해와 통찰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 연구는 미얀마의 쉐우민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 알아차림을 이어가면서 작성한 수행 일지를 중심으로, 자문화기술지 연구방법을 통해 분노와 저항의 마음이 연구자 자신의 내면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이해되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매순간의 알아차림 과정에서, 나뭇잎보다 더 작고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에서 전해지는 어떠한 힘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이 힘의 느낌을 관찰하면서 저항은 존재 자체의 '생명있음'의 본성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졌다. 이 연구에서 '나비의 날갯짓'은 저항을 상징하며 분노를 관찰하면서 떠오른 이미지는 '검은새'였다. '검은새 날다'는 분노의 내적 변용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
공적 사건에서 촉발된 분노의 마음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과정을 통해 본 연구는 다음 세 가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공적 차원에서의 분노이다. 공적차원에서 일어난 분노와 저항의 마음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과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더 완전하고 포용적이며 포괄적인 관점에서"(Wilber, 2016; Wilber, 2020)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하기 위한 통로가 된다. 둘째,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분노이다. 마음을 지켜보는 과정은, 공적인 사건에서 촉발된 분노 또는 수행처라는 권위와 위계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분노와 저항의 마음에 더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한 분노를 재조명하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한 분노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과정으로서의 삶을 다시 살아가게 한다. 셋째, 수행적인 측면에서의 분노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앎이란 과거를 부정하거나 왜곡하거나 윤색하지 않고 일어난 현상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삶의 조건을 바꾸어나가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켄 윌버Ken Wilber는, 인간의 진화와 발달에 있어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깨달음과 현실적인 삶에서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대한 통합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Wilber, 2016; Wilber, 2020). 수행은 인간의 삶에 기반한 것이므로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지고의 지향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 연구는 자문화기술지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외부에서, 타인에 의해서는 알아질 수 없고 말 되어질 수 없는 개인 내적인 경험의 주관성과 독특성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문화기술지는 개인의 경험을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 성찰하는 연구방법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과 성찰, 개인의 삶의 과정에 더해 자아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이해를 풀어낸다(Jones, 2005). 연구자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연구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연구자 개인의 경험과 이해라 할지라도 연구자가 속한 공동체적 세계와 분리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