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 장차 왕정이 시행될 것임을 시사하며(신 17:16-20), 사사기 또한 사사 시대의 혼란함이 왕에 의해 종결될 것임(삿 21:25)을 암시하고 있기에, 사무엘서의 왕정은 가식적인 하나님 나라로서의 면모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왕정을 도입한 이스라엘에서 이 땅의 하나님 나라로서 위상은 보이지 않고, 배신과 욕심, 살인과 반역과 같은 악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국가가 어떻게 가식적 하나님 나라를 대표할 수 있으며, 그리고 제사장 나라이며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출 19:6)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소망은 어디에 있으며, 더욱이 그들의 삶과 복음의 연결점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오경에서부터 사무엘서로 이어지는 역사를 보면, 우리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땅 가나안이 곧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주하기 원하시는 땅이며, 하나님의 의지가 나타난 땅이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 저들을 두시면서, 그들과 함께 거하고자 하신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통치 방법이 '율법'이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법은 존재한다. 이 율법은 그의 백성의 도덕성을 지키고 사회를 유지한다. 또 율법은 그 백성이 선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며 힘이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주변 열방의 법과 차별되는 자유의 법이다. 율법은 그 백성의 삶을 지키는 안전장치이기에 율법을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통치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율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서,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신 8:3; 마 4:4). 따라서 율법을 '모세오경'의 법규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여 이해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게 만들어 오히려 율법과 현실의 상관관계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또 교리적인 측변으로 율법을 살피게 되면, 율법은 그야말로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식이 된다.
이에 사무엘서는 오경에서 제시하는 율법의 틀을 기본으로 하면서, 삶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갖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율법에 관한 지식이 능동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사무엘서는 이 율법의 지식이 단순히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는 지식이며, 그분이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성장과 결과를 성취하는 지식임을 밝히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결과로 얻어지는 율법의 지식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어야 하며, 넘치는 율법의 생명력을 다윗처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율법과 새로운 세대가 연결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은혜의 고리는 바로 율법의 지식이 전달하는 능력을 공감하고 경험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는 율법의 이 같은 이해를 위해 첫째로 율법에 대한 힘과 능력을 차단하는 율법의 제한된 평가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개방적인 시각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율법의 의미를 살필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사무엘서의 율법의 개념들을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모세오경이나 구약이 말하는 율법의 개념에 대해 '증거'로서의 특징에 근거하여 율법이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보편적 은혜임을 밝힌다. 또 사무엘서의 주제 중 선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 순종과 불순종,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로 대비되는 주제들을 연구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 율법을 행하였을 때 생기는 결과를 살펴보며 그러한 결과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며, 복음과의 연결점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율법을 즐거워하는 다윗의 고백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고백일 수 있는가를, 율법을 통한 영혼의 소생이 지금도 정당한 것인지를 사무엘서 나타난 율법의 증거를 통하여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