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철학사에서 무지(avidyā)는 고통과 번뇌의 근원으로 여기며, 해탈을 위해 소멸시켜야 할 핵심적 과제로 다룬다. 무엇이 무지이며 그 소멸 방편은 어떤 것이 있는지 밝히는 것은 해탈과 깨달음의 과정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고전 우빠니샤드에서 무지는 윤회의 원인이며 지혜의 반대개념으로 나타난다. 또한 베다의 제식행위에 얽매여 있는 지식이기도 하며 지혜와 함께 브라흐만에 속한 것으로도 언급된다. 상키야·요가철학에서 무지는 고통과 속박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쁘라끄리띠의 전개가 시작되는 하나의 영향력으로 설명한다. 요가철학에서 무지는 번뇌의 근원으로서 자의식, 탐욕, 혐오, 애착 등의 번뇌가 생겨나는 근거로 해석한다. 특히 요가철학에서 무지는 고전 우빠니샤드에서처럼 형이상학적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고, 그것으로 인한 번뇌의 생멸과 잠재인상, 윤회로 연결되는 실재적 의미로 활용된다.
요가철학에서 무지소멸을 위한 실천적 수행으로 제시하는 것은 팔지요가와 삼매이다. 팔지요가는 야마, 니야마, 아사나, 쁘라나야마, 쁘라띠야하라, 다라나, 디야나, 싸마디로 이루어진 수련체계이며 삼매는 크게 유상삼매와 무상삼매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들의 실천수행은 마음의 작용을 제어하고 지혜(식별지, 쁘라갸)의 빛을 밝혀 무지를 소멸하는 방편이 된다.
상키야·요가철학에서 무지는 쁘라끄리띠의 전개를 뿌루샤의 활동으로 지각하는 일원론적 오류인 반면에 베단따철학에서 무지는 아뜨만과 브라흐만이 하나라는 범아일여의 사상을 깨닫지 못하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특히 아드바이따 베단따의 무지는 초기 베단따를 대표하는 샹까라에 의해 번뇌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무지로부터 욕망이 욕망으로부터 행위가 일어나는 '아비드야 까마 까르마(avidyā kāma karma)'라는 합성어는 무지가 여러 번뇌들의 일련의 연쇄 중 가장 근원적 요소임을 나타낸다. 후기 베단따에서 무지는 은폐력과 산출력을 가진 존재론적 의미로 해석된다. 즉, 물질세계를 설명하는 근거로서 무지를 사용하여 설명하는데 이러한 무지의 본질적 문제는 브라흐만을 유일한 존재로 인식하는 불이론 베단따 학파의 난제로 남는다.
이러한 무지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베단따 학파의 무수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제거'가 진리와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은 상키야·요가철학을 포함한 인도철학 전반에서 공유하는 중요한 사실에 해당한다. 아드바이따 베단따에서는 무지소멸을 위해 브라흐마비드야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아스빠르샤요가와 빠리상키야나의 수련을 제시한다. 아스빠르샤 요가는 '모든 것은 고통이다'에 대해 반복적으로 상기하는 방법과 욕망과 향락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무집착의 수련이며 빠리상키야나의 수련은 성전과 전승서의 진리, 즉 아트만의 불이성과 범아일여를 반복하여 듣고 숙고하는 과정이다.
두 학파는 고통의 근원을 그릇된 인식인 무지에서 찾는다는 점과 무지 소멸의 방편을 지혜의 획득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학파에서 지혜를 획득하는 실천적 방편 역시 명상과 삼매의 수련법임을 알 수 있다.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혜를 획득하는 것이 그 방편이며 깊은 명상과 삼매의 수련을 통해 지혜를 성취한 후 해탈에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