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성장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정치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 원인을 조망할 수도 있고 외교나 국제정세 속에서 살필 수도 있다. 산업화, 근대화, 구국운동, 민족운동 등, 근대에 이르는 한국의 상황을 간과할 수도 없다.
실제로 복음이 조선의 문을 넘어올 당시, 사회 전반적인 여건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극도로 불안한 정치 환경 속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경제적 원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장기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자립을 도모하였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 자립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한국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었고 그 동력은 성경에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성경공부는 한국교회 부흥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초기 한국 교회에서 시행되던 성경공부의 한 형태인 '사경회'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채택으로 더욱 체계화되고 확대되었다.
성경을 중시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한국에 적용되면서 교회는 근대화의 과정에서도 괄목할 만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적용은 한국 교회의 신학적, 신앙적 정체성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많은 연구가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자립, 자전, 자치'라는 삼자정책으로 요약한다. 물론 삼자정책이 한국선교 토착화에 끼친 공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삼자 정책을 구동하기 위한 핵심 원리가 성경이었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성경을 강조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한국의 성경 읽기 운동은 물론 장로교를 비롯한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단인 장로교의 성장에 미친 영향이 크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결실로 한국 장로교는 최초의 교회, 노회, 총회를 세웠다. 개혁주의 성경관과 조화를 이룬 이 정책이 한국 장로교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장로교는 괄목할 성장 뿐 아니라, 그 성장을 통해 한국교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청교도적 신앙의 전통 수립, 선교적 교회의 위상 수립,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부흥에도 영향을 주었다.
본 연구는 전례 없는 한국 기독교 고도성장의 요인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근간이 된 성경 중심 정신과 그 전략에 있다고 보았다. 성경 번역과 보급, 권서들의 활동과 사경회, 대부흥과 각성, 지도자 양성과 선교사 파송에 이르기까지 초기 한국 기독교에 나타난 다양한 결실들은 성경 중심, 성경 존중, 성경 우선 정책이 맺은 결실이었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결실이 맺히면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교회의 외연에서 움직이던 선교단체들이 교회와 '더불어' 사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단체들의 성경 중심 사역은 한국 기독교 부흥의 지렛대 역할을 하였으며 성경에 갈급한 성도들의 영적인 욕구를 해갈하며 바른 지식을 제공해 주었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추구하던 성경공부 전략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읽기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그 사역과 영향력이 한국에서 열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성경읽기운동으로 활발하게 사역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UBF, (사)생터성경사역원, 바이블동서남북, 통성경이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한국 기독교의 성장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여 UBF와 (사)생터성경사역원의 성경읽기 운동을 중심으로 성경공부와 교회성장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드러내었다. 바이블 동서남북과 통성경 역시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기에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래서 네비우스의 성경공부 강조 정책이 한국 교회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과 그 정책이 한국교회의 성경읽기 운동으로 연결되어 21세기의 교회성장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