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 문화사에서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전성기로, 조선시대(朝鮮時代)는 침체기 내지 쇠퇴기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차 문화에 대한 고찰은 오늘날 차 문화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에서의 고찰이 필요하다.
본 논문은 조선시대 후반기의 차 문화를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이운지(怡雲志)」의 '다공(茶供)'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임원경제지』는 서유구가 40년에 걸쳐 찬술한 사대부들의 농촌 생활을 위한 생활백과사전이다. 여기에는 차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이 체계적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차에 대한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다공은 차 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을 '물의 품등', '땔감의 품등', '탕의 징후', '끓인 물 따르는 법', '씻는 방법', '소금으로 간 맞추기', '차와 과일', '차 마시는 방법', '차 생활 도구' 등 9개 분야로 나누어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한 문헌은 당·송·원·명대의 문헌 20종이며, 저자 자신의 의견인 '안설(案說)'에서 치밀한 고증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차 생활에서 중요한 과정인 '물의 품등', '땔감의 품등', '탕의 징후', '차 생활 도구(2회)'에서 본인의 경험과 견해를 피력하였다.
'물의 품등〔수품(水品)'〕에서 당대 육우의 『다경』에서 북송대, 명대까지 총 25종을 인용하여 상·중·하 물의 품등과 먹지 말아야 할 물을 소개한다. 안설에서는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물의 품등 기준을 가진 『태서수법』과 『건륭어제집』을 소개하지만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이것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실증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찻물을 끓일 때 숯불이 원칙이고 차선책으로는 단단한 땔감인 뽕나무와 오동나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인용 문헌의 견해에 대해서 서유구는 본인의 경험상 뽕나무나 오동나무 땔감은 불꽃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추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한편 "차를 끓일 때 다관을 쓰고 솥 종류는 쓰지 않는다면, 차 끓일 솥은 없어도 좋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의 음다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진술이다. 이것을 통해 여러 가지 종류의 차가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병차를 쪼개거나 부수어 끓여서 마시는 당대의 자다법·전다법, 가루차를 물에 풀어 거품을 일으켜 마시는 송대의 점다법, 잎차를 뜨거운 물에 넣고 우려 마시는 명대의 포다법 등 여러 음다법이 당시의 중국에 혼용되고 있었고 이러한 음다법이 조선 후기 사회에도 상당 부분 유입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차 생활 도구'에 관해서는 당나라 『다경』의 24가지 기물과 명나라 『준생팔전(遵生八箋)』의 23가지 다구는 결국 비슷하므로 취사선택하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80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음다법이 변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차 문화 쇠퇴기로 알려진 조선 후기에 차 문화 보급을 위해 이처럼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들을 『임원경제지』에 집대성한 서유구의 업적은 주목받아야 할 업적 이다. 따라서 그동안 조선 후기 차 문화 부흥을 이끈 인물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와 함께 풍석 서유구도 더욱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그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