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이종구가 1980년대부터 탐구한 농촌회화에 대한 연구이다. 1980년대는 사회적·경제적 격동기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군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립하여 몇몇 미술가들은 소집단을 만들어 현실정치에 대항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종구는 1982년에 민중미술 소집단인 '임술년98992'를 창립하고 비판적 리얼리즘을 전개했다.
이종구는 처음부터 서사와 메시지를 내포한 리얼리즘 작품을 하고자 했다. 단순한 서술이 아닌 작가 고유의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극사실 기법으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으로 화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그의 관심은 경제발전으로 호황인 도시의 그늘 속에 가려진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장 3.25m²-상황〉은 반쯤 열린 맨홀 뚜껑으로 지하에서 작업하고 있는 노동자의 상황을 암시한다.
이종구는 1984년부터 고향 서산시 오지리를 주제로 농촌사회의 암울함을 회화로 계속해서 표현했다. 따라서 그는 농촌, 농민의 작가로 자리매김 했다. 이종구는 고향에서 가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자각했고,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고 있었던 이문구의 농촌소설에서 농촌 표현의 영감을 받았다. 이종구 1984년 〈연혁-아버지〉를 시작으로 농촌회화에 적극적으로 매진했다. 시작했다. 작품에 표현한 아버지의 생애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보편적인 농민의 일생이다.
이종구의 농민 초상화는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농민들의 애환을 보여주고 소, 농기구 등 사물을 의인화하여 농민의 삶과 감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오지리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으나 농촌의 실상은 점차 황폐해져갔다. 이것은 오지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농촌의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이종구는 생명을 길러내던 땅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농촌 상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농촌을 지키는 농민을 민족의 주체로 규정했다.
이종구는 농민들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사수하고 있는 농촌 사회를 서사적으로 표현했다. 양곡부대, 포스터 등 오브제를 사용하여 주제를 부각시키고 현장성과 객관성을 더했다. 이종구는 농촌을 유토피아적 공간이 아니라 고단함, 비극이 있는 공간으로 표현했다. 이종구에게 농촌은 역사와 민족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으로 민족의 터전이자 삶의 근원이었다. 이종구의 농촌회화는 극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땅을 지키고, 땅을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의 민족성을 일깨워주었다.
이종구는 추상의 압도적인 권위 속에서도 형상을 복원하여 대중에게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했다. 전통적 미술 매체가 아닌 일상의 매체를 사용하여 탈 경계를 이뤘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열풍 속에서 이종구는 다(多)장르, 다(多)매체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것은 단순히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원리를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익숙한 전통의 이미지를 변형하여 서술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오브제 매체로 실험하기도 했다. 이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종구는 매체와 형식의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이 갖는 강한 호소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리얼리스트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