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적천수』에 대한 후대 평주들을 비교하고 분석하여 한가지 원문으로 평주한 시각에 따라 달라져 있는 주석에 대하여 다른 견해들은 왜 발생하게 되었으며 어떤 해석이 더 타당한 것인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현존하는 『적천수』의 판본으로 진소암이 편집 출판한 『적천수집요(滴天髓輯要)』, 임철초가 주석하고 손형보가 간행한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 임철초 주석본을 서락오가 편집 간행한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 『적천수』 원문에 서락오가 주석한 『적천수보주(滴天髓補註)』, 『적천수』 원문에 반자단이 주석한 『적천수신주(滴天髓新註)』 등을 모두 수집하여 원문과 평주를 비교 분석하였다.
『적천수집요(滴天髓輯要)』와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의 원문 자구(字句) 비교에서는 『적천수집요』가 탁월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락오의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를 『적천수』 구성의 재배치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적천수천미』의 구성보다 질서 정연하게 정리하기는 하였지만, 『적천수징의』의 일부 배치구성에서는 모두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기 어렵고 불합리한 선택도 발생하였다고 보인다.
『적천수』에 담겨있는 명리이론을 큰 범주로 나누어 억부론, 격국론, 종격론, 간지론, 형충회합, 조후와 용신, 원류와 행운, 육친론 등 8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였으며, 원문을 각 범주로 분류하고 4인의 평주를 비교 분석하였다. 『적천수』에 나타난 8개의 명리이론 범주를 통해 4인의 평주를 비교해 본 결과, 후대 평주 간 비교에서 가장 이견이 많이 나타났던 평주자는 임철초였으며, 두 번째는 서락오였다. 임철초는 억부론 부문에서 본인의 일간 억부용신 이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왕상휴수 생왕사절에 대해서 죽은 법이라고 배척하는 의견을 펼치다 보니 다른 평주자들과 이견이 많이 발생했다. 격국론 부문에서도 일간(日干) 중심적 사고를 강하게 가지고 있던 명리학자였던 까닭에 관살혼잡도 일간이 강하면 가(可)하고 상관견관위화백단도 일간이 강하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등 일간의 신강신약(身强身弱)을 강조하여 다른 평주와 간극을 드러냈다. 특히 육친론 부분에서는 그가 전통적 육친론을 배척하고 윤리적 경향을 띠는 유교적 육친론에 따른 이론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이견이 많이 나타났고, 여명(女命)편에서는 다분히 가부장적 입장을 가지고 여명 이론을 전개하고 있으므로 사회상이 많이 바뀐 현대 사회에서는 그의 이론만을 가지고 여성의 명을 살피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된다.
서락오의 평주가 임철초 다음으로 다양한 부문에서 많은 수의 이견을 가진 것으로 집계되었던 것은 그가 본인의 색깔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명리학자였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精神), 강유(剛柔), 순역(順逆), 팔격(八格) 등에서 이견이 많이 나타났고, 종격론 부문에서는 이견이 많이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서락오가 원문의 종격 이론이나 임철초의 확장된 종격이론에 대해서 대부분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서락오의 평주가 이견을 보인 횟수가 상당히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궁통보감』의 명리이론에 집중하는 경향성 때문이었다. 진신과 가신을 조후용신과 연관 짓고, 육친론 부문에서도 『궁통보감』 육친론을 계승하여 용신(用神)이 자식이고 용신을 生하는 신(神)이 부처(夫妻)라는 기준을 가지고 평주를 전개하므로 이견이 많이 나타났다.
『적천수』의 저술 시기를 송대와 원대가 아니라 명대 이후로 본다고 해서, 그리고 원주(原註)를 유명인사였던 유백온(劉伯溫)의 이름을 가탁한 것이라고 해도 명리고전 『적천수』의 가치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적천수』는 청대와 중화민국,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의 평주와 해석들이 등장하였고, 이 사실이 바로 『적천수』가 명실상부 최고의 명리고전이라는 것을 반증하였다. 이번 『적천수』 판본 연구 및 후대 평주 비교연구를 통해 평주의 차이점을 정리하여 밝힘으로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